아버지의 의자 / 경기도 이천시 율면 고당리
아버지는 80여 평생
편안한 의자에 앉아 보지를 못하셨습니다.
어려서
읍내 중학생 때부터 객지생활을 하시며
배를 굶주려야 하셨고
서울로 전학하셔서는 낯설음과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셨지요.
엄하신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기셔서
졸업과 동시에 군에 입대하셔 30여년을 긴장속에 살아오셨습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서울 객지생활 정리하시고 모두 떠나고 안계신 고향으로 낙향하셔서
전원생활을 하시게 되었지요.
노후에는 여유롭게 사셔도 되는데
평생 심적물적 여유롭지 못한 삶에 익숙하셔서
가족들을 늘 채근하셨고
당신에게는 더욱 강직하게 사셨습니다.
물질적인 여유로움 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신 삶이 계속 되셨지요.
아버지 곁에는 늘 편하게 쉴 의자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던 몇해전 가을
대추나무에 병충해 소독을 하신다고 평상대에 올라 약을 뿌리시다가
낙상하셔서 골절 수술을 여러차례 받으시며
쇠약하신 몸을 회복못하시고
노인주간보호센터에 나가신지 3년여 되는군요.
체중이 50kg도 안나가시고
걸음걸이도 어눌하셔서
맏이로서 뵙기가 많이 속상합니다.
코로나 전에는
마을 목욕탕에 모시고 가서
따뜻한 물에 맛사지도 해드리곤 하였는데
시절이 하도 수상하여
여의치 못하게 1주일에 한번씩 찾아뵙는 것이 다네요.
이제
허약해지신 몸이 돼서야
아버지의 의자가 생겨났습니다.
그것도 의자가 3개
현관앞 의자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옛날 나무의자지요.
식사하시고 담배 태우러 나오셔서
한참을 머물다 들어가시는 명상 의자입니다.
두번째 의자는
아랫마당 평상대 앞에 있지요.
윗마당에서 내려오셔서 힘이 부치시면 앉으셔 기력을 회복하기도 하시고
마당을 몇바퀴 도시며 운동하시고 쉬시는 의자
그리고 세번째 의자는
도로쪽으로 50여m 경사면을 올라가셔서 노인주간보호센터 차량을 기다리시는 의자
이 의자까지 올라오시는데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어머니께서 늘 배웅차 함께 오르시는 곳이기도 하지요.
1주일 마다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들 말 동무도 되어 드리고
장도 봐드리고 외식도 하곤하는데
원래부터 고집들이 강하셔서 저하고 의견충돌이 많아 서로 힘들곤 합니다만
그래도 늘 저를 기다리신다고 하니
시간 지켜서 꼬박꼬박 내려가곤 합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아버님 노인주간보호센터 가고 오실 때
부축도 해드리며 말동무를 하는데
평소 말없는 집안 분위기에도 아버지는 센터에서 있었던 일을 이것저것 얘기하시고
저도 관심있게 듣고 질문하며 짧은 거리를 긴 배웅하고 맞이하네요.
생각해 보면
이 짧은 거리 10여분이 아버지와의 가장 긴 거리 긴 시간의 대화인가 싶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간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