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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Mar 26. 2022

나뿐 기운을 막아주던 신비한 우리 토종, 가래나무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3.26.토. 가래나무 이야기)

나뿐 기운을 막아주던 신비한 우리 토종, 가래나무    


“업아!~ 밭 갈러 가자구나!”

아버지께서 소를 몰고 나서시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업이는 쟁기얹은 지게를 지고 아버지를 따라 나서네요.

“아버님! 다녀오셔요!~”

어여뿐 며느리가 부엌에서 나와 인사를 합니다.


산자락 경사진 밭을 반나절 고랑을 내려 쟁기로 갈지요.

업이는 쟁기 잘 끄는 암소에 멍에 채우고 쟁기 가래를 날 세워 소를 몰며 가고 아버지는 뒷따르며 고랑을 고릅니다.

소 모는 소리가 계곡을 울리고 이에 화답하듯 뻐꾸기 소리가 되돌아 오네요.


한참 후

며느리가 새참을 내와 도란도란 먹으며 땀을 식힙니다.

“밭 위쪽에 늘어선 저 나무가 가래나무란다. 열매가 쟁기 날 모양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더라. 저 나무가 참으로 신통하여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좋은 기운을 맞이 한더라지 아마!~ ”

“집 앞에 있는 나무도 가래나무지요. 아버님?”

“그래 맞단다!~ 가을에 열매 겉껍질을 잘 벗기고 말려서 단단한 속씨를 반으로 쪼개어 속을 발라 내면 그 맛이 참으로 고소하지.”

“저도 이번 가을에는 가래나무 열매 맛을 볼 수 있겠네요. 아버님!”

“업이가 잘 쪼개주어야 맛을 볼 수 있지. 뭐~”


업이는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해

집 앞 가래나무가 간밤 태풍에 가지 부러지던 날이

업이를 낳던 날, 무척이나 산고를 격던 어미가 업이 낳고 몇일만에 죽고 젖 동냥할 곳도 없어 굶다시피 간난애기 시절을 보내다 보니 젖도 모자라고 정도 모자라 시름시름 크게 앓고 나더니 말을 못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품성이 부처님 같아

아버지 봉양 잘 하고

색시에게 극진하니

마을에서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해 가을

주렁주렁 달린 탐스런 가래나무 열매가 떨어져 내려

봄에 약속했듯이 과육을 벗겨내고 잘 말려서

반으로 쪼개니 영락없는 쟁기의 가래 모양이었지요.

공들여 과육을 파내어 조그만 종기에 담아 아버님께도 드리고

처음 맛보는 색시에게도 주니 참으로 고소하고 좋아라 하니

업이의 얼굴에 소박한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실한 가래 열매를 잘 말려

뾰족한 곳은 잘 갈아서 둥글게 하여 두짝씩을 만들었지요.

하나는 아버님 것

또 하나는 색시 것

손아귀에서 두 알을 돌리면 소리도 듣기 좋고

혈액순환에도 좋아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아버님께 드리니 참으로 좋아라 하시네요.


그렇게

소박한 행복의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가래나무가 꽃피고 잎 틔우고 열매 맺고 낙엽지고...



마을 원님이 새로 부임하여

호두라는 나무 묘목을 새로 보급하여

집집마다 호두나무를 울안에 심게 되었지요.

생육이 잘 되어 튼실하게 자라 몇해 안되어 가을에 커다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다니, 보기도 좋았고 익은 열매는 알맹이도 많이 들어 있어 마을 사람들의 원님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맛은 가래나무 열매 맛인데, 열매도 커서 고소한 맛을 더 많이 맛볼 수 있어 참으로 좋구나!”


마을에 호두나무가 많이 심겨지게 되니

마을 이름이 호두나무골이 되었지요.

그런데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호두나무가 양지가 되었으니 가래나무는 음지가 되어

집집마다 거치장스러운 가래나무를 베어내게 되었습니다.


업이네도

호두나무를 얻어다 심었는데

아버지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야!~ 중국에서 굴러 들어온 것이 박힌 돌을 뽑아 내는 꼴이구나! 저 가래나무가 얼마나 신령스런 나무인줄도 모르고~ ”


마을에 마지막 남아있던 업이네 가래나무도 관헌들이 들이닥쳐 베어내었고 아버지는 몇날 몇일 나무 밑둥을 부여잡고 눈물 흘리며 위로하였습니다.

“내 아버지가 너를 심은 것이 나 태어나기 수해전이라 했다. 내가 너와 더불어 커가며 너와 어울려 놀면서 내가 너인듯 했고 너가 나인듯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쓰러지니 내 마음도 무너지는구나. 내 부모 큰 뜻으로 너를 심었을진데 뵐 면목이 없구나. 저 세상 가서 내 부모 만나 깊은 회한 풀고 평강하거라. 나의 나무여~”


그리고

얼마후

관청 건물 새로 짓는다고 많은 마을 청년들과 함께 업이가 노역하러 가게되었습니다.

근 1년여를 고생하며 노역에 시달리게 되었지요.

간혹 각시가 찾아와 눈물로 해후를 하며 아버님 안부를 전해주곤 하였습니다.

업이의 옷은 해지고 손 발은 부르트고 찢겨져 색시가 보기에 너무도 안타까웠지요.



그런데

상량식이 있던 날

상량하려 올리던 대들보가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기우뚱 떨어져 내리는 것을 귀 밝은 업이가 먼저 알고

소리치려 하였으나 그리할 수 없으니 급히 달려들어 온몸으로 원님과 관헌들을 밀쳐내고 자기는 대들보에 깔리게 되었습니다.


집에 엎혀온 업이

마을은 눈물 바다가 되었고

모두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아버지와 색시를 남겨두고 저 세상으로 갔던 것이지요.


그 충격으로 실성한 아버지는

“문밖에 업이 와서 기다린다. 밭 갈러 가야지. 며늘아가!~ 새참 준비하거라!~”

부엌에서 그 소리를 듣는 며느리는 닭똥같은 눈물을 소리없이 흘리는 것이었지요.

부뚜막에 나란히 놓인 가래 열매를 바라 보면서...




에필로그

마을에서는 업이네 베어낸 가래나무로 정각을 세워 업이를 의인으로 추앙하게 되었고 속깊은 색시가 낳은 아들은 아버지를 본받아 나라의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여 백성들을 아우르는 명재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위로받은 가래나무의 좋은 기운이 낳은 결과로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산자락의 거대한 가래나무에게 제를 올린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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