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자연휴양림 / 홀로 외로운 나무를 위로하다(storytelling
숲에는 거대한 숲을 아우르고 이끄는 신령스러운 정령이 계십니다.
그리고 많은 요정들이 정령을 받들고 있지요.
버섯들의 요정
풀꽃들의 요정
동물들의 요정
그리고
나무들의 요정
숲에는 먼 옛날부터 조상의 형질대로 터전을 닦아 살아가고 있는 숲의 생명들이 있습니다.
가리왕산에는 가리왕산에 적응해 살아가는 동식물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먼 옛날
궁핍하여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마을에 큰 기근이 돌아
굶주리던 아이들이 많이 죽어 갔습니다.
아비는 거적으로 죽은 아이를 둘둘 말아
지게에 짊어지고 지금 휴양림이 있는 곳에
돌무더기를 파고 묻어다고 하지요.
피같은 아이를 묻고 내려오는 아비는 얼마나 한스러웠을까요?
아비는 아이의 영혼을 달래 주려고
튼실하게 오래산다는 은행나무를 무덤가에 싶었다고 합니다.
휴양림에
마을의 정자목이나 도심의 가로수로 알려져 있는 은행나무가 심겨지게 된 연유지요.
주변의 커다란 소나무, 참나무들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이 가녀린 어린 은행나무를 내려다 보고 있었지요.
"못보던 나무일세!"
"그러게요! 이곳 숲과 어울리지 않는 나무네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있었지만
은행나무는 의연하려 했습니다.
'우리 조상은 화석식물에도 나올 만큼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해온 나무로 오래 사는 장수목이다.
조상에게 욕되는 일이 없도록 반듯하고 굳건하게 살아내자!'
숲속 요정중에 어린 은행나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무 요정이 있었습니다.
"힘 내셔요!
이곳은 오랜 세월 우리들만의 세계였는데
낮설은 나무가 심겨지니 당황들 하셔서 그러지
과묵한 분들이지요."
한해 두해 세월이 가면서
적응이 될 법도 한데
가을만 되면
은행나무 족속이 그리워
노랑잎을 토해내듯 떨구며
한풀이 하듯 했습니다.
더욱이
어른 나무가 되어서는
외로움도 외로움이지만
꽃을 많이 피워도
반겨줄 상대 나무가 없으니
그 한숨은 깊어 갔고
그런 해 가을에는
샛노란 은행잎을 떨구는 것이었지요.
이 은행나무는
수컷 나무였던 것입니다.
위기도 찾아왔지요.
휴양림 주차장을 아스팔트로 포장하면서
은행나무가 주차공간을 차지한다고
은행나무를 베어내자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대대수의 직원들이 은행나무 베어내는 것에 찬성하였고
그렇게 아스팔트 포장 전날이 도래하였지요.
한편
나무 요정은 걱정 되어 몸둘바를 모르고
정령께 간곡히 선처를 호소하였습니다.
은행나무는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리 없었고
숲속의 정령만이 눈을 지긋이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주차장 포장 당일
기적이 발생하였지요.
휴양림을 사계절 자주 찾아오시는 노인께서
사정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은행나무를 두둔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가리왕산을 매해 자주 옵니다.
이 곳의 오염되지 않은 풍요로운 숲에서
말 할 수 없는 평안한 안식을 느끼며 시적 철학적 영감을 얻지요.
그리고
저 은행나무로 인해 많은 생각을 깨우침니다.
외로운 듯
외롭지 않은
반듯하게 굳건하게 자라는 모습에서
봄의 새싹 돋음으로 생명의 신비를 깨닫고
가을 샛노랑 은행잎의 떨어짐을 보며
말없는 슬픔을 느끼지요.
그것이 제게는 한없는 위로입니다.
비단 저만 그럴까요?"
그리고
'저 은행나무는 먼저 간 생명을 위로하며 대신 살고 있다' 는
이야기는 말미에 꺼내는 것이었지요.
노인의 말을 경청하던
휴양림 직원분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요.
뜨거운 아스팔트가 포장되던 날
은행나무는 그 아픔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런
아픔과 우여곡절이 있은 후
은행나무는 더 의연한 모습으로 멋스럽게 자라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연세가 많이 드신 꼬부랑 할머니께서 묘목 한 그루를 힘들게 등에 지고 와
은행나무 맞은 편에 정성껏 심으셨습니다.
소문에
70여년 전 어린 아들을 잃은 그 할머니였고
저 세상 갈 날만 기다리며 살고 있는데
꿈속에 그 어린 아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것이었지요.
한평생 살아오시며
일찍 잃은 어린 자식 가슴에 한으로 묻고 잊고 산적 없지만
마음에 많이 걸리고 '뭐 해줄 것 없나?'싶어
그 아들 위해 심은 은행나무가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암 나무를 구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숲 속의 정령께서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며
나무 요정을 바라보네요.
"이제 나무 요정이 할 일이 남았지요?"
나무 요정은
수컷 은행나무와 암컷 은행나무를 오가며
서로 마음을 소통케 하며 가교 역할을 하였습니다.
교감을 통해
은행나무 두 그루는 멋스럽게 자라났고
가을에 풍성함으로 가득 채웠으며
숲의 다른 나무들과도 잘 어울려 지내
모두에게 풍요로움을 선사했다지요.
미국의 식물학자 루터 버벵크는
나무에게도 20여 가지의 지각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조금 늦은 속도지만 알고 느낀다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닐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