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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Oct 30. 2023

과묵한 토끼를 보며(옹달샘 숲 이야기)

과묵하고 의로운 토끼 이야기(storytelling) / 검봉산자연휴양림

episode


토끼들이 칡잎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흐뭇해지며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얌전하게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종교의식 같기도 하고

'세상에 제일 중요한 것은 잘 먹는 것'이라는 무언의 표현같아서


닭장의 주인인 닭들도 토끼들의 먹는 의식에 동화되어 

칡잎을 한두번 입으로 찍어보곤 하는데 별맛없음에 그만두지요.


겨울을 준비하는 그 토끼들을 위해

매일 아침 출근길에 칡잎을 한다발씩 뜯어다

닭장(토끼우리)에 넣어 주고 한참을 바라봅니다.


바쁜 출근길 

아침 이슬에 젖어가며 뜯어다 준 고마움에 보답하듯

발자국 소리에 깡총깡총 이쪽으로 달려오고

칡다발을 넣어주기 무섭게 맛나게 먹지요.


그 옛날

내 어머니도 이른 아침부터 남편과 자식들 아침상 정성드려 차려내셨는데

출근길, 등교길 바쁘다고 한술 밥 뜨는 둥 마는 둥 도시락 가방들고 뛰쳐나가는 모습에

안스럽기도 하셨겠고 서운하기도 하셨겠다 싶어

요즈음 고향집에 내려가면 늙으신 어머니께서 차린

된장찌게, 삶은 호박잎, 고추간장 등 소박한 밥상에 고봉밥을 군소리없이 뚝딱 먹어 치우곤 합니다.

이런 밥상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여...



칡잎을 먹는 토끼 모습을 보노라면 먹는 것이 우아할 수 있구나 싶지요

2023. 10. 16


다른 어떤 먹이 보다 아침에 뜯어다 주는 싱싱한 칡잎을 좋아합니다

2023. 10. 22



storytelling


초 여름

산골의 할아버지가 숲에서 길잃은 흰색과 잿빛 산토끼 새끼 두마리를 데려와

닭장에서 기르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닭들이 텃세를 부리며 부리로 토끼 새끼를 쪼을 때마다

새끼들은 피해다니며 많은 날 눈치밥을 먹어야 했지요.


닭장에 익숙해질 즈음

흰토끼 새끼는 닭모이를 먹어가며 닭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지만

잿빛토끼 새끼는 닭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실속있게 먹는 것과 운동에 집착했습니다.

가끔 주인 할아버지 몰래 찾아오는 엄마 토끼가 칡잎을 가져다주면

잎부터 줄기까지 빠짐없이 먹어치웠지요.

그리고 엄마의 말을 기억했습니다.

"가을이 올 때까지 잘 먹어서 튼실하게 자라거라!"

배불리 먹고는 좁지 않은 닭장 안을 내달리며 체력을 기르고

땅파는 연습을 계속하였지요.


눈치빠른 할아버지가 가끔 닭장 안으로 들어와 파놓은 구멍을 삽으로 메꾸기를 반복하였지만

그럴 때면 잿빛토끼는 다른 구석에 남모르게 굴을 파며 이곳저곳에도 구멍을 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었을 때

해가 지고 나자 잿빛토끼는 흰토끼에게 말했지요.

"아우야! 굴이 완성되었다. 함께 나가자구나!"

"됐어요! 밖은 위험하고 저는 이곳이 편하고 좋아요!"

잿빛토끼와 엄마의 설득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잿빛 토끼는 흰토끼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굴을 통해 닭장 밖으로 나와

엄마를 따라 숲으로 달아났지요.


날이 밝자

주인 할아버지가 잿빛토끼가 달아난 것을 알고

흰토끼도 달아날 것을 염려하여

흰토끼를 잡아 먹기로 했을 때

위협을 느낀 흰토끼는 지난 일을 후회하며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뚝뚝 흘러 내렸습니다.


많은 닭들은 남일인양 모두 잠들어 있던

그날밤

잿빛토끼가 닭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흰토끼를 위해

굴을 파기 시작했지요.

한번 팠던 곳이라 어렵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닭장 안으로 들어온 잿빛토끼는 흰토끼와 함께 굴을 빠져나와 숲으로 도망쳤지요.


그 이후로

잿빛토끼는 숲에서 형제를 구한 의로운 토끼로 이름을 알려

엄마 아빠 토끼를 기쁘고 자랑스럽게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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