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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Nov 12. 2023

용담으로 피어난 큰구슬붕이(옹달샘 숲 이야기)

봄꽃 큰구슬붕이가 가을꽃 용담으로 피어나기까지 storytelling

episode


군생활 30여년후

숲해설가로 첫 근무지인 고향인근 충북 음성 수레의산 자연휴양림에 근무하던

2011년 5월 초 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던 때

출근후 생태 모니터링차 임도를 오르는데

길가 옆 잔디밭에 푸르스름한 작은 꽃들이 보이길래 다가갔습니다.


잔디 길이만큼 자란 꽃대에서 앙증맞은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지요.

흔한 꽃은 아니지만 강렬하지도 않은 꽃이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1주일여를 그 꽃에 매료되어 눈높이를 맞춰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관찰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그 꽃을 '하늘의 파란별이 내려앉은 꽃'이라고 별칭하고

봄마다 큰구슬붕이를 맞이하는 것이 큰 기쁨이었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인상적으로 닥아온 꽃은 없었습니다.

그 꽃을 바라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지는 기분이었지요.

큰구슬붕이가 사람과 바다에 지친 고단한 군생활을 위로하는 듯

그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쁨이 샘솟는 듯했으니까요.


작지만 위로의 힘이 큰 꽃으로 봄마다 제게 다가옵니다.


5월초 다른 키큰 풀들이 올라오기전에 한살이를 시작하는 앙증맞은 꽃, 큰구슬붕이



storytelling


나의 이웃 조상은

'큰구슬붕이'지요.

큰구슬붕이는 구슬붕이에 비하여 크다는 뜻이고

구슬붕이라는 이름은 작고 앙증맞은 꽃이 줄기에 하나씩 달리는 것이

고운 구슬 봉 같다 하여 지어졌다 합니다.


4월말 5월초

숲속 옹달샘  아래

물이 흘러내려가는 도랑 옆

양지바른 잔디 에서

낙엽을 헤치고 앙증맞은 꽃들이 피어납니다.

'하늘의 파란별이 내려앉은 꽃'

큰구슬붕이지요.


전체 크기가 잔디 크기로 5cm 내외

잎과 꽃이 피어나기 전에는 잔디에 파묻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듭니다.


큰구슬붕이의 생존전략은

크기가 잔디 크기만 하다는 것

그래서 외부의 침입으로 부터 잔디가 보호를 해주고

습도와 온도를 적절히 유지해 주지요.


아울러

다른 식물들은 볕좋고 바람좋은 날씨에 씨앗 껍질이 갈라지거나 벌어져 있다가

바람이나 동물들에 의해 번식하는 것과 달리

큰구슬붕이는 비가 오는 굿은 날씨에 씨방을 벌려 씨앗들을 물에 흘려보내는

'수중 분만'이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귀한 씨앗들을 산포합니다.


에 흠뻑 젖은 채 끝이 두 조각으로 갈라져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살짝 벌린 모습을 하여

씨앗을 내보내는 모습 비장하기까지 하지요.


그늘에서 자라서일까요? 축 처진 긴 줄기 끝에 꽃몽우리를 매달고 꽃을 피웁니다


봄비 내리던 어느날

엄마 큰구슬붕이의 애쓴 덕분에

귀한 작은 씨앗 빗방울에 엄마의 품에서 튕겨 나와

물길 따라 흘러 도랑 가까운 칡잎에 묻어 있게 었고

마침 옹달샘에서 물먹고 가는 길에 칡잎을 먹으러 온 토끼의 먹이로 함께 먹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깊은 숲으로 들어  토끼의 배설물로 나온 씨앗들은 이듬해 솔숲이 우거진 경사면에서 씨앗이 발아해 싹을 틔우게 되어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졌지요.


예전에 엄마가 살던 지바른 곳과는 다르게 우람한 나무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어 따뜻한 햇볕을 온전히 받기가 힘들었지

엄마의 '수중분만' 정성과 평소 가르침대로 '작지만 의미를 전하는 꽃'이라는 긍지를 되새기며 열심히 몸집을 키워 갔습니다.

자연스럽게 키가 웃자라 낭창낭창한 줄기를 가지게 되었으며 마땅히 의지하고 기댈 곳이 없어 휘어진 모습으로 풀섭에 섞여 누운 모습으로 지내게 되었지요.


동료들과 외떨어져 살게 되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

엄마는 '하늘의 파란별이 내려앉은 꽃'이라고 불리지만 나는 '바다의 푸른별이 솟아 오른 꽃'이라고 불렸으면 했니다.

이곳 산 능선에 올라서면 푸르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니까요.

 

그리고 매일 매일 바다를 생각하며 푸르른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해가 지나는 동안 우람한 나무들과 풀섶에서의 녹녹치 않은 삶은 저를 더욱 단련시켰고

매마르고 추운 겨울의 혹독함은 저의 의지를  강건하게 했지요.


어느 늦은 가을

드디어 기대하던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낭창낭창한 줄기끝에 꽃몽우리 하나를 틔워서 깊은 바다빛을 닮은 우아하고 신비한 꽃을 피웠던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날 그 산토끼가 옆을 지나다 꽃을 보고 반갑게 다가와

"지난 밤 꿈속에 꽃을 보았고 숲속 정령님이 꽃과의 인연을 말씀하시며 꽃의 이름과 약 성분이 어떠하다고 일러주셨지요."

"저의 이름이 큰구슬붕이 아닌가요?"

"큰구슬붕이는 봄에 피는 꽃이고 당신은 가을에 피는 꽃으로 용의 쓸개라는 뜻의 '용담'이라고 하셨습니다."

"'용담'이요! 특별한 의미가 있을 듯하네요."

"귀하게 쓰일 날 있을  거라 정령님이 말씀하셨지요."


10월 중순 커다란 풀과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곳에 낭창낭창한 줄기 끝에 꽃을 피운 용담


큰구슬붕이 꽃말 :  기쁜 소식

용담 꽃말 :  긴 추억, 당신의 슬픈 모습이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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