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슬쌤 Sep 10. 2020

황예슬의 Bravo, 소비.

Feat. 사고 싶은 건 사면서 살렵니다  

예전부터 난 Steve Jobs가 Commencement Address에서 강조했던 "Connecting the dots"를 열렬하게 믿어왔고 지금도 저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이다. 어쩌면, 내가 이 말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이유는 상황에 따라서 내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마치 마법 같은 말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점이라고 하면, 그 점들이 나중에 하나하나 모여 연결이 되면 선을 이룬다는 이야기. 


내가 매일 같이 하는 일, 수업 준비, 독서, 콘텐츠 소비, 콘텐츠 만들기 등, 이 모든 것들이 나중에 선을 이룬다라고 생각하면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나의 대책 없는 소비 패턴에 이 멋진 말을 응용해보자니 살짝 양심에 찔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Bravo, 소비!) 


나의 소비 패턴은 대충 이렇다. 딱히 살 이유는 없으나, 사고 싶은 게 생기면 나 자신에게 "connecting the dots, " 라며 "이 물건을 사두면 언젠가는 쓰겠지" 자기 합리화를 하곤 한다. 그리고 지른다. 


내가 정말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원래는 더 싼 가격을 알아보고, 다른 물건과 비교해보고, 리뷰도 찾아보고, 며칠 동안 고민하고 사는 게 소비의 정석이겠지만, 나의 소비에는 이런 프로세스 자체가 없다. 그냥 지나가다가도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산다. 집에 가서 그 물건이 눈에 아른거려 스트레스받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기에 (스트레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타입) 지르고 본다. 


(생각해보면 난 내가 산 물건 중에 왜 샀을까? 싶은 것들은 없는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였던 물건들이 있어도, 이 역시 나중 되면 다 쓸모가 있겠지 싶어서 방 어딘가에 쟁여둔다.) 


그렇게 해서 하나하나씩 사고 모은 것들이 하나의 선을 이뤄 나의 '홈오피스'를 구축했는데, 며칠 전에 내가 나의 소비에 감탄(?)했던 일이 생겼다. 



그리고 난 나 자신에게 말했다, 


"맥시멀 리스트로 살아도 되겠다, 얘."
(셀프 쓰담쓰담)






요즘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수업을 집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Zoom 앱과 과 Skype 앱을 번갈아가며 쓰고 있다. 두 앱 다 좋지만, Zoom이 여러 명과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더 편하고, 맥북과 아이패드가 블루투스로 호환이 되어 화이트보드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 있어서 Zoom을 압도적으로 더 많이 사용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번 주에 예기치 않게 개인 수업으로 전환된 학생들이 Zoom대신 Skype가 더 편하다고 하여 Skype를 중점적으로 쓰게 되었는데, 아이패드를 화이트보드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했다. 당연히 Skype 도 화이트보드 기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스카이프에는 없단다. 


굳이 화이트보드로 적어가며 설명을 할 필요한 수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욕심으로는 학생에게 한 스텝 더, 한 문장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스카이프에 판서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2년 전에 '대륙의 실수, 가오몬 태블릿'이라는 광고에 혹해 사서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태블릿이 내 뇌리를 스쳤다. 


솔직히 그 태블릿을 왜 샀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즐겨 그리는 것도 아닌데. 아니, 그림을 그릴 이유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때 심정으로는 '태블릿 하나 갖고 있으면 그림을 그려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어이없는 이유지만 그때 당시 황예슬은 대륙의 실수인 가오몬 태블릿을 한번 사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에휴 ㅋㅋㅋㅋㅋ)



무언가에 홀린 듯 태블릿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펜도 연결해서 충전을 시키고 세팅을 시킨 다음, 필요한 앱을 다운로드하고 본격적으로 태블릿을 쓸 방도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이패드 앱인 Good Notes를 맥북에 다운로드하여서 태블릿을 연결해보기로 했다. 




유레카!!





결과적으로, 나는 이 태블릿을 애지중지 해가며 요즘 온라인 수업을 잘하고 있다. 이유 없이 산 태블릿으로 인해, 나는 Skype와 Zoom을 왔다 갔다 하며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춘 선생님이 되었다. 


이것이 다 "한번 꽂히면 사야 하는 소비패턴을 가진 2018년의 황예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고마워 과거의 나야.
(자기애 최대치) 




작년 말, 이사를 하기 전에 미니멀리스트로 살아보고자 내가 갖고 있던 문구들 50% 이상을 나눔 했다. 미니멀리즘이 대세였던 시절에 극 맥시멀 리스트로 산다는 건, 한번 고려해볼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들을 인스타그램 팔로워 분들 나눠드리고, 우리 학원에 나눠주고, 주변분들 나눠드리고 해서 짐을 대폭 줄였다. 


그 뒤로 내가 미니멀리스트로 살았을까? 


아니.


미니멀리스트로 살기엔, '소비'가 내게 주는 기쁨이 너무 크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는 게 그렇게 즐겁다. 그리고 내가 산 것들을 사용하고 내가 갖고 있는 물건에 대해 기록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 맛을 이미 알아버린 내게,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건 어쩌면 이번 생에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난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행복한 소비"를 계속해 나아갈 생각이다. 


그 대신, 나의 소비패턴에 한 가지 조건부를 달았다: 


1) 그 물건을 어디에 쓸 건지 정확한 이유를 '소비 노트'에 적을 것. 

1a) 그 이유를 고려했을 때, "그 물건만이" 그 이유를 충족시키는지, 아니면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도 그 이유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 고려해볼 것.

1b)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사지 않는다. 

1c)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없다면 말해 뭐해 당장 산다. 


2) 1번의 이유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데에 이바지하는 이유인지도 적을 것.

2a) 만약 그 이유가 나의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 다면 사지 말 것.

2b) 만약 그 이유가 나의 행복과 직결된다면 말해 뭐해 당장 산다. 




오늘은 위의 조건에 충족하는 물건이 없었으므로, 소비 없이 하루를 보냈다. 

대신, 당근 마켓에 처음으로 나의 물건을 팔았고, 돈을 벌었다. 


다음 시간엔 나의 first 당근 마켓 experience에 대해 적어보겠다.


Bravo, 소비!
매거진의 이전글 일과 여가를 분리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