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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Mar 16. 2021

당신의 무진은 어디인가요?

Feat. 무진기행.

더 클래식의 한국문화 컬렉션 001. 무진기행 - 김승옥. 

뭔가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써보고 싶었다.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고 해야 할까. 

제목과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여태까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책. 열고 싶었던 상자를 드디어 열은 느낌이어서 <무진기행>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이 책은 김승옥 작가의 가장 중요한 단편소설 12편을 수록한 책이다. <무진기행>으로 시작하여 <서울의 달빛 0장>으로 마무리한다. 그가 쓴 모든 소설들 속 존재하는 단어들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부드러웠기에, 그의 글을 읽은 이상 비루하기 짝이 없는 나의 글을 보며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였으나, 그래도 괜찮다. 이리도 아름다운 글을 읽을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 


<무진기행> 한 남자가 무진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시작된다. 무진은 그가 일상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일한 탈출구다. 그가 무진에 있는 동안은 현실에 쌓아두고 온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하루 종일 씻지도 않은 채 집에서 뒹굴거려도 아무도 뭐라 하는 이 없다. 비록 그가 어렸을 때 살았던 무진은 고통과 어둠밖에 없던 곳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는 일주일 동안 무진에 머무르며 갖가지 일탈을 꾀한다. 그래서인지 일탈의 끝에 남아있는 부끄러움은 온전히 그의 몫이 된다. 


<무진기행>을 읽으면서 들었던 하나의 생각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곳이 <무진>이라면, 나의 <무진>은 과연 어디일까? 

내가 현실로부터 벗어나 일탈을 꿈꾸고, 자유를 꿈꿀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나도 일탈 끝에 현실로 돌아가는 길에 나 자신이 했던 행동과 선택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움에 몸부림치게 될까? 


역설적이게도 나는 살면서 일탈을 꿈꿔본 적이 없다. 

그것이 내가 현재의 삶에 너무 안주하고 있다는 뜻일까, 아님 삶에 만족도가 너무 높은 나머지 현재의 행복에 충실하다는 뜻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사색이 필요할 듯하다. 


당장의 일탈 대신 제주도에 별장을 지어 디지털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꿈꿨다. 

지금도 물론 -ing이고,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이것이 나의 일탈이라면 일탈일 수도 있겠다. 


또한, 무진을 에워쌌던 안개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우리네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무진을 찾는다. 안개가 자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가 무진을 대하는 태도가 나의 삶이 태도가 되길 바란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삶이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선택하고,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 그런 삶.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삶의 몽환을 받아들이고 나를 맡겨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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