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슬쌤 Feb 12. 2020

진심은 전해진다.

내가 가진 딜레마에 대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감동받는 순간들이 정말 자주 있는데, 오늘 또한 감동 한 움큼 먹은 날이라, 기억하고자 글을 쓴다. (학생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학생 이름을 "A"라고 칭하겠다.)


A와의 첫 만남은 2019년 여름이었다. 무척이나 더웠던 그 날에, 2시에 시작하는 오후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이었다. 학생이 듣고자 했던 수업은 토플이었고, 나는 Writing과 Speaking을 가르치게 되었다. 여름에는 반에 학생수가 많아서 1:1로 알 기회가 많이 없었다. 개학을 하면서 A는 학원을 떠나게 되었고, 우리는 인스타로 가끔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이번 겨울방학 때 A가 또 왔다. 단체수업을 한 후에는 1:1 개인수업을 하게 되었고, 그때 우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많이 알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개인수업을 한 지 2주가 지났고, 이번 주 토요일에 토플을 치는 A의 마지막 수업은 바로 오늘이었다.


내가 백투백 수업이 있어서 학생에게 다른 말은 못 하고, "토플 잘 쳐!"라는 말만 남기고 다음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을 옮기려는데, 학생이 수줍은 표정을 하고 내게 와서 초콜릿과 카드를 줬다. 그리고 나랑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부끄럽다면서 도망가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그리고 나는 수업을 마치고 카드를 읽었고,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학생이 쓴 아름다운 말 중에 내게 가장 기억이 남는 부분은,

"점수를 떠나서 진짜 기본적인 부분부터 많이 부족한 저 잡아주시고
선생님과 했던 이야기들이 너무 유익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라는 부분이었다.




사실 나는 수업이 90분이라고 가정하면 5-10분은 늘 인생 얘기, 사는 얘기를 한다. 그때그때 이슈가 되고 있는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 사는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소통을 한다. 소통을 하지 않으면 학생들을 알아 갈 수 있는 기회가 잘 없고, 정말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하는 수업은 나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부분들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이 아이들이 나를 찾은 건 인생을 배우기 위한 게 아니라 영어를 배우러 온 것일 텐데. 영어수업을 위해서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는데 왜 이 선생님은 다른 이야기를 하시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내가 사는 이야기, 학생들이 사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에. 또한, 혹여나 우리가 가볍게 하자고 시작한 대화에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여태껏 아이들을 9년간 가르쳐오면서, 나와 나눈 대화들을 쓸모없다고 생각한 제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나와 수업을 하고 나서 내게 편지나 카드로 고마운 마음을 전할 때 꼭 있었던 말이 바로, "선생님의 이야기가 정말 재밌고 유익했어요."라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으로부터 받은 이 카드에 더욱더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평소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늘 마주치는 딜레마의 설루션을,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을 해줬으니까.


내가 앞으로 얼마나 학생들을 지도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 이 딜레마의 승자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물론 영어공부도 정말 중요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영어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과 배우는 학생이기 전에, 마음과 마음이 만나 서로의 귀한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 대 사람의 관계일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