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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Feb 13. 2020

누가 이기나 해보자.

feat. 예민함

나는 지금도 꽤나 예민한 편이지만, 나의 예민함이 극에 달했을 때는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특히나 12학년 때는 대학 입시와 학생회장직이 겹치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있던 예민함이 하늘을 찔렀고, 나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행사들 중, 다른 학교 학생회와 함께 손을 잡고 진행하는 큰 행사를 내가 총괄 리더로서 진두지휘 할 때는, 실수 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밤잠을 설쳤고, 확인했던 것도 계속 반복적으로 확인해가며 나 자신을 옭아맸었다. 그런 나의 예민함은 나를 스트레스 덩어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30대가 된 지금은, 내가 나 자신을 나름대로 잘 파악해서 예민함을 잘 다스릴 줄 안다고 자부하는데, 학생 때는 그런 노련함이 내겐 없었다. 그래서 그 예민함의 결과물을 고스란히 내가 떠안아야 했고, 가끔은 예민함에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잠도 잘 못 자고 공부에도 집중을 잘 못하는 내가 너무 미웠다.





내가 강박을 갖고 있었던 많은 부분들 중 몇 개의 예를 들어보자면:


1) 대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내가 마지막으로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것에 대한 강박이 꽤나 심했어서 어른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도, 혼자 방에 들어가서 마지막 말을 나지막이 뱉기도 했다.



2) 시간/숫자

-시간은 무조건 5분 단위로. 예를 들면 기상 시간은 7:05분, 7:10분은 괜찮지만, 7:03분, 7:06분은 안된다.

-무언가를 살 때 3,5,7 단위로 홀수로 구매해야 한다. 짝수는 왠지 싫다.

-숫자 강박 역시 심했어서, 뭐든지 내가 좋아하는 숫자에 맞춰서 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박수를 치는 것 마저도 난 딱딱 맞춰서 했다.


3) 공부

-내가 과제를 해서 제출하는 종이에는 화이트 자국이나 구겨짐 따위는 1도 없어야 했다.

-과제를 거의 다 해가다도, 마지막에 글자 하나 잘못 써서 화이트를 써야 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험을 치다가도 틀린 부분이 생기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새로운 시험종이를 다시 받아서 싹 다 고쳐서 냈다. 이 강박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시험을 칠 때는 시간이 한정적이어서, 주어진 시간 내에 다 고쳐야 했기 때문에, 옮겨 적다가 실수를 해서 점수가 낮게 나온 적도 있다.


4) 안전

-집에 문이 잘 잠겨있는지, 내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람이면 문이 닫혀있는지 최소 5번 확인하기.

-TV가 꺼져있는 걸 봤으면서도 의심이 가서 다시 켰다가 끄기. 최소 5번은 해야 마음이 놓인다.


5) 색깔


-내가 좋아하는 보라, 파랑, 초록, 검정, 회색 계열 색깔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 봤다. 특히 보라와 초록에 집착이 심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매일같이 엄청난 예민함과 강박의 콜라보에 맞서 싸우느라 진을 뺐었다. 그런데 나의 강박이 점차 사라지고, 예민함의 레벨이 조금씩 내려오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iPod 사건>이다.


나는 12학년 때 이 사건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일로 꼽아서 대학입시 에세이로 썼을 정도로 크게 생각했던 일이었다. 15년이 흐른 지금, 당연히 <iPod 사건은> 그렇게 중요한 사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옭아매고 있던 강박을 이겨 낼 수 있게끔 도와준 일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참 남는 일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뮤지션인 부모님의 큰 딸인 내가 그들의 음악적인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건 너무나도 당연했고, 카세트 플레이어로 시작, CD 플레이어를 거쳐 iPod를 갖게 될 때까지, 음악은 나와 늘 함께였다.


그 날은 내 인생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루였다.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iPod Mini (지금은 단종된)를 아빠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의 iPod Mini를 선물로 받은 나는, 그때부터 애플에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튠즈는 정말 신세계였다.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노래들을 아이튠즈에 띄울 수 있다니! 스크롤만 내리면 모든 곡들이 쫘르륵 나오는 게 정말 신기했고, 랜덤으로 틀어주는 셔플 기능도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혼자 신나서 감탄에 감탄을 더해가며 정말 흥분되는 마음으로 아이튠즈와 몇 시간 동안 씨름을 한 끝에, 아이튠즈에 있는 모든 곡들을 나의 미니에 넣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곡을 다 옮긴 뒤에 나는 호기롭게 컴퓨터를 끄고, 미니와 함께 제대로 된 밤을 보낼 상상에 너무 기뻤다.


하지만, 현실은 (강박은)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미니로 음악을 들으려고 스크린을 딱 봤더니, 노래 제목, 가수 이름, 등등 정리가 하나도 안되어있었던 것이다. 정리정돈 부분에도 굉장히 민감했던 나는, 노래 제목에 숫자가 들어가 있다던지, <>()* 등 특수문자가 들어가 있는 것도 용납이 안됐다. 그리고 가장 싫었던 건, 아이튠즈가 가수 이름을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가수가 "god"라고 치면,


god

God

GOD

지오디

god (지오디)


윤계상, 손호영, 안데니, 박준형, 김태우가 속해있는 그룹은 "하나"의 그룹인데, 미니는 다 다르게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미니에 들어있는 지오디의 노래는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내게, 이런 점은 당연히 용납이 되지 않았고, 그때부터 나와 아이튠즈의 전쟁은 시작이 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주말을 꼬박 새워서 3천여 곡의 제목과 아티스트, 앨범, 장르까지 다 손으로 작업을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수정하고 새로 태어난 곡들을 내 미니에 넣었을 때의 그 희열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맞아, 그때 참 기뻤는데.


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났다면 아마 나는 지금도 강박과 싸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 내가 맛볼 수 있던 그 기쁨의 길이는 아주 짧았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된 미니는 나의 보물 1호였고 나는 어디를 가던 미니를 꼭 들고 다녔다. 우리 학교에서 큰 댄스파티가 열린 그날, 나의 미니가 굳이 내 가방에 없었어도 되었던 그 날, 어김없이 미니는 나와 함께 했다. 내가 총책임자였기 때문에 빨리 가서 일을 했어야 했는데,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가 무슨 이유에서 많이 급하게 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내가 댄스파티를 할 때마다, 모든 분야를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학생회 친구들에게 말을 많이 했어야 했는데, 음악이 너무 커서 큰소리로 말을 해야 했다. 목을 많이 쓰다 보니, 목이 무척 말랐었고, 그때마다 '다음엔 마실 것 꼭 챙겨 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집을 나오려던 찰나, 그 생각이 났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파란색 파워 레이드를 챙겨 나왔다. 또 때마침 목이 말랐고, 굳게 잠겨있던 파워 레이드를 열었고, 마셨고, 닫았고, 가방에 넣었다. 물론 미니와 함께.


그날따라 가방도 큰 토트백을 들었다. 파워 레이드가 가방에서 콸콸콸콸 쏟아지고, 가방 안에서 쏟아진 파워 레이드가 대환장파티를 열어 미니를 초대해서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을 때까지 내가 까맣게 몰랐을 정도로 가방의 부피는 컸다. 학교에 도착해서 가방을 열었을  이미 나의 미니는 RIP.


그때 당시 나의 심정은..........

댄스파티고 뭐고 미니 살려보겠다고 휴지로 닦고 미니를 휴지 위에 올려놓고 계속 털고. 눈물이 앞을 가려 앞이 보이지가 않는 와중에 미니는 계속 파워 레이드를 뱉어내고 있고. 일이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일은 해야 하고. 뭐 그랬다. 지금 생각해도 애잔..



그때 내가 정말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다.

기를 쓰고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고 해도, 무너질 것은 무너진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서 공을 세워도, 안 되는 건 안된다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내 인생에 또 일어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실패에 처절히 몸부림치며 매일을 후회하며 살아야 할까?

아니면 이미 지나간 일이니, 훌훌 털어버리고,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훌훌 털자"였다.




그 이후에 아빠가 다시 iPod 클래식을 사주셨다. 성능으로 보나, 사이즈로 보나, 미니보다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친구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클래식에게는 손이 잘 안 갔다. (이게 바로 첫사랑의 감정인가,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아이튠즈에 손을 대지 않았다. 어차피 수정해도 파워 레이드가 엎어버리면 끝인걸. 인생, 대충 살아도 되는 부분에는 대충 살자, 싶었다. 강박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꼼꼼하고 예민해야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잘 분별해서 살자, 다짐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예민함과 강박은 별것 아닌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왜 그리 모난돌처럼 미운 점이 많아 보였는지. 후회스럽다. 이렇게 훌훌 털어버릴 줄 알았으면, 예민함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고등학생 때의 나를 좀 더 사랑해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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