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서사 의학이란무엇인가
<서사>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 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내가 소비하는 모든 콘텐츠에는 저마다 <서사>가 있고 각각의 서사가 주는 울림이 있기에 콘텐츠에 중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말이다. 그만큼 <서사>라는 단어가 가진 힘은 실로 대단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의 서사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이처럼 <서사>라는 단어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떼려야 뗼 수 없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오늘 읽은 <서사 의학이란 무엇인가>는 제목부터가 끌렸다. 의학과 서사라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둘의 만남 속에서는 과연 어떤 서사가 펼쳐질까,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현대 의학이 나아가야 할 공감과 연대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책으로, 서사 의학을 통해 의료인은 환자가 말하지 못한 아픔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환자는 질병으로 인한 슬픔을 버틸 힘을 찾게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결국 공감할 것이라는 확신을 만났다.
책은 총 7부로 지어져 있다.
1부: 상호 주관성
2부: 이원론, 개인성, 체화
3부: 교육과 정체성
4부: 자세히 읽기
5부: 창의성
6부: 앎의 질적 방법
7부: 임상 진료
"미완성 서사를 가지고 의사에게 온 환자는 의사와 함께 서사를 써나간다. 의료는 함께 서사를 써나가는 작업이며, 여기에서 환자와 의사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글을 쓴다." P.481
- 한국에 와서는 의사 선생님들과의 마찰이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미국에서는 얼굴을 찌푸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의료보험이 제대로 안되어있는 나라인지라, 미국에서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가 제대로 진찰도 안 하고 내보내기 일쑤였다. 그중 최악의 경험은 내가 8학년 때 아토피 때문에 피부과를 찾았는데 나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컨설팅 비용이랍시고 $80을 내라고 했던 것과, 코딱지만 한 연고 하나 바르라고 던져주고 $400을 내라고 했던 것.
약은 약 값이 비싸서 그랬을 수도 있다 치지만 컨설팅 비용? 뭘 해줬다고 컨설팅? 결과적으로 그 비싼 연고를 발랐을 때 내 상태가 더 나아졌다면 그 와중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었을 수 있었겠지만 전-혀. 기분은 기분대로 상하고 내 몸도 나아진 게 없었기에, 미국에 살면서 병원에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그 기억은 내 삶의 최악의 경험 중 TOP 5에 들어갈 정도로 별로였다. 덕분에 미국에 살 때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내 몸을 끔찍하게 아끼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을 읽자니 그 병원과 그 의사가 생각이 났고, 만약 그가 <서사 의학>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의 경험은 달랐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토피로 온 몸이 가려움증과 진물에 가득 찼던,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서사를 가지고 갔던 나, 그리고 그 서사의 마침표를 찍어줄 수 있었던 그 의사. 우리가 만약 함께 서사를 써나갔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미국의 의료혜택에 대해, 차가운 의사에 대한 이미지가 트라우마적으로 남지는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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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환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려는 이들을 위한 필독서다. 또한, 의료인과 환자가 문학을 읽는다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따라서 의료인으로서, 혹은 의료인들의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꼭 한번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점점 더 기술화/관료화되는 보건의료 시스템의 한계에 서사 의학이 어떻게 답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먼저, 사회정의를 향한 우리의 헌신은 보건의료의 차별을 인식하고 그에 저항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종, 젠더, 성적 지향, 계층, 장애, 시민권, 습관, 언어 중 어떤 것도 전문적 돌봄을 받을 권리를 축소하지 않는다. 우리는 수익을 향한 기업의 게걸스러운 탐욕이 웅크리고 있음을 알고,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부와 건강의 격차에 맞서는 투쟁에 참여한다." P.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