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오늘 하루종일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혐오'에 대해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꺼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P.22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밝히는 사회역학의 눈으로 한국사회 건강불평들을 말하는 책이다.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왜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는지에 대해 다루면서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더 아플 수밖에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에 책을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 반, 내가 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마음 반이었다.
또한,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인간의 몸을 병들게 하는지에 대해 배운다는 것은 불편함 투성이었지만 이 역시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많은 생각을 해주게 한 고마우면서도 불편한 책이 아닐 리 없다.
책은 총 4장으로 지어져 있다.
1장: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2장: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3장: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4장: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폭염으로 인한 사망을 자연재해로,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적인 원인을 찾고 그에 기반을 두고 대응 전략을 마련했던 행정기관과 그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시민들이 거둔 성과였습니다." P.30
- 뉴스를 보면 자연재해나 감염병이 돌면 확실히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아프고 죽는다. 기분 탓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사회적인 구조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약자들이 계속 밖으로 밀리는 것이었다. 이를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사람들이 함께 사회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들의 잘못이라, 그들이 노력을 안 해서, 그들이 부주의해서,라는 딱지를 붙이지 말고. 사회 곳곳에 분명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다. 도울 사람들은 제발 돕고 살면 좋겠다.
"아무리 우아한 이론을 가져와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갖다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혐오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저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분명 그럴 거라고 저는 믿어요." P.218
- 혐오라는 단어는 단어 자체가 주는 무거움과 억압감이 있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이 단어. 제발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단어 중 하나인데, 내 삶 이곳저곳에 너무 만연한 나머지 사람들이 서로에게 손가락질하고 혐오하는 시대에 마침표가 찍어지는 날이 과연 올까 싶다. 혐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 받아야 할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주변에도 너무 많다. 인간은 어차피 혼자 살 수 없으니, 서로를 좀 더 품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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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분명 무겁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수많은 문제점들은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부족함 마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 이야기다. 함께 나누며 답을 찾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추천한다.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