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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Feb 29. 2020

2020년 2월의 마지막 날

Feat. 4년에 한 번 오는 오늘은 Leap Day!

오늘은 4년에 한 번 오는 2월 29일. 이제 2024년까지 다시 오지 않는 그런 날. 

평범했던 하루지만 오늘이 특별한 날인 만큼 기록하고 싶어서 쓴다. 이 글을 4년 뒤에 읽었을 때 감회가 되게 새롭겠지? 



1. 한 달 쓰기, 내일이 마지막. 

한 달에 대한 이야기는 내일 써야지. 내일이 한 달 마지막이니까! 하지만 2020년 2월 29일에 대한 글에 한 달 이야기 역시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적어놓는다. 





2. 누네띠네와 SAT

오늘은 토요일. SAT 수업이 메인인 하루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차 안에서 혼자 머리 굴리면서 노트 적고, 시간 돼서 학원으로 갔다. 갔더니 우리 실장님께서 나에게 누네띠네처럼 생긴 빵을 주셨다. 실장님은 늘 내게 먹을 것을 챙겨주신다. 그래서 덕분에 맛있는 누네띠네를 먹고 수업을 시작했다. 배가 든든했다.


행복했던 것도 잠시. 학생이 이번에 친 시험지를 가져왔고, 채점을 해보니 여태까지 공부한 것 중에 최저 점수가 나왔다. 왜 이렇게 시험을 못 쳤냐고 물으니 아침에 와서 시험을 쳤기에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않는데, 학교에서 과제를 주고 2시간 만에 끝내서 내라고 시킨단다. 즉, 학교에 가지는 않지만 학교에 있는 것처럼 선생님들이 과제를 많이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학교에라도 나가면, 환경설정이 잘 되어있기 때문에 어떻게 서든 시간을 맞춰서 과제를 하고, 물어볼 것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질문도 하면서 마무리를 잘 지을 텐데, 집에서 환경설정을 스스로 하기엔 아이들이 아직 너무 어리고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은 수업 시작부터 울상을 지으며 차라리 학교에라도 가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원래 내 스타일대로라면, 평소보다 실수를 많이 한 학생에게 따끔하게 말을 했겠지만, 오늘은 4년에 한 번 오는 특별한 날이고(?) 또 학생이 코로나 때문에, 학교 과제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보통 때 같으면 2절 정도 갔을 잔소리를 그냥 접었다. 대신 학생에게, 오늘을 기억하라고 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고, 4년 뒤에 올 텐데, 그때쯤이면 넌 대학생일 거고,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날을 기억하자고. 너는 너대로 SAT를 평소보다 못 봤던 날이었지만, 선생님에게 크게 혼나지 않고 기쁘게 수업을 했다는 것을. 나는 나대로, 따끔하게 혼냈어야 할 학생을 혼내지 않고 앞으로 열심히 하자고 토닥토닥거려줬다는 것을. 그리고 약속했다. 오늘을 이렇게 보낸 것에 대해 후회하지 말자고. 


그랬더니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주에는 정말 열심히 해서 최고 점수를 찍어보겠다고 했다. 


사실 이 학생은 그런 말을 할 학생이 아니다. 미대를 가고 싶어 하는 학생인지라, SAT는 별 관심이 없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느라 바쁜 학생이다. 또한 평소에도 SAT를 잘 풀어오지 못한 것에 대한 이런저런 핑계도 많고 해서 내가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학생이다. 하지만 오늘은 2월 29 일인 만큼 (황예슬 특징: 의미 부여하는 것 좋아함) 잘 타일러서 수업을 진행했더니, 저런 말을 했다. 


원장님께도 보고를 드렸다. 학생이 역대급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지만 별말은 안 했다고. 원장님께서도, 요즘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 오늘은 잘 타일러서 수업하는 게 낫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고생이 많다며 오히려 나를 토닥이신다. 내 마음을 늘 잘 알아주시는 우리 멋쟁이 원장님. 덕분에 일하는 게 항상 즐겁다. 


그래서 오늘은 학생이 낮은 점수를 받아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잘 넘길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더 따뜻했다고나 할까. 




3. 마스크와 커피빈 딸기 라테

나는 커피를 일절 안 마신다. 카페인이 몸에 안 맞아서 그 흔한 차 한잔도 못 마시기 때문에 카페에서 새로운 시즌 음료가 나오면 제일 먼저 카페인이 들어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페마다 카페인이 없는 음료는 거의 다 마셔봤다고 호언장담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카페들의 계절 음료나 카페인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들을 잘 알고 있는데, 내가 마셔본 딸기 라테 중에 가장 맛있는 딸기 라테는 단연 커! 피! 빈! 우선 우유가 저지방 우유가 들어가고, 딸기를 정말 아낌없이 넣어준다. (커피빈은 자색고구마 라테도 마찬가지로 고구마 페이스트가 아니라 진짜 리얼 순 고구마를 갈아서 만들기 때문에 진짜 맛있다.) 그래서 요즘 출근할 때 커피빈 딸기 라테 레귤러 사이즈로 사서 마시는 게 하나의 소소한 행복이었는데. 


요즘 수업을 할 때 마스크를 끼고 해야 해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빈의 딸기 라테를 마신 지가 꽤 오래됐다. 마스크를 내렸다가 한 모금 마시고 수업하고 또 마스크 올리고, 이렇게 하는 게 생각보다 되게 귀찮고, 그 잠깐 2-3초 사이지만 수업의 흐름이 끊긴다.  그래서 좋아하는 딸기 라테를 안 마신 지 1주일 정도 된 것 같다. (갑자기 마시고 싶다)




4. 집에 오는 길 

집에 가는 길에 커피빈 딸기 라테를 마실 까 말까 고민하다가, 사람 많은 곳은 괜히 가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다. (안전 예민증)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길. 차가 많이 막히지 않는다. 원래라면 토요일 압구정, 특히 현대백화점 앞은 정말 막혀야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거리에 차가 없다. Traffic을 정말 극혐 하는 나에겐 정말 반가운 소식이지만, 집에 오면서 뻥뻥 뚫려있는 고속도로를 보고 반가운 마음 대신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5. 된장찌개와 감자볶음 

수업을 하면서 말을 많이 하고, 또 내가 말을 조곤조곤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학원 전체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게 말을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 그래서 수업을 하고 집에 오면 배가 되게 고프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우리 루나와 인사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었더니 이미 내 점심이 멋지게 차려져 있었다. 오늘 메뉴는 엄마표 된장찌개와 감자볶음.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 yes! 그래서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6. 햇빛이 들어오는 내 방을 마주하다.

요 며칠 사이에 비가 많이 온 것도 있고, 해가 떠있을 때는 일을 한다고 밖에 나가 있기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는 내 방을 참 오랜만에 봤다. 그래서 보통은 반만 올려놓는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렸다. 그다음은 내 침대로 점프해서 책을 읽었다. 




7. 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알렉스 비어드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Natural Born Leaders)인데, 정말 유익한 내용이 많다. 저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마주한 신개념 교육현장에 대해 세세하게 풀어가는 모습이 꽤나 흥미롭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께 강력 추천한다. 



8. 이디야 딸기 라테 

엄마와 동생이 밥 먹고 카페에 가서 음료수를 투고해다 주는데, 내가 좋아하는 딸기 라테를 사다 주었다. 하지만, 이디야의 딸기 라테는 커피빈의 딸기 라테에 비해 딸기가 많이 안 들어갔고, 약간 artificial syrup 맛이 나서 내 스타일 아닌 걸로. (하지만 다 마신 건 함정.)



9. 심리테스트 feat. 흑임자 미숫가루 

내가 지난 포스팅에도 썼지만, '구수한 사람들'이라는 몰에서 흑임자 미숫가루를 샀다. 그게 너무 맛있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극찬을 하고 다니는 중이다. 몸에도 좋고 맛도 있고,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어제 심리테스트를 해서 내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봤는데 "카페라테를 좋아하는 너구리"가 나왔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카페라테를 못 마신다. 그래서 이걸 본 내 동생이, "흑임자 미숫가루를 마시는 너구리"가 나왔어야 한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겨서 진짜 둘이 울었다. 


그리고 내 흑임자 사랑에 대한 다른 반응들:


결론은 흑임자 최고.



10. 아빠 걱정 

우리 아빠는 사업차 베트남에 계신다. 그런데 한국이 코로나가 이렇게 퍼지면서 한국에도 쉽게 못 들어오게 되었다. 다시 들어가게 되면 14일 동안 자가 격리를 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의도치 않게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다. 원래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아빠가 베트남에 계시기 때문에 평소에 잘 못 봐도, 가까운 나라에 계시니까 언제든지 비행기 타고 우리가 가던가, 아빠가 오던가 하면 되니까 매일매일 보고 싶어도 가깝게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지만, 막상 우리도 못 들어가고, 아빠도 나올 수 없다고 하니 더 걱정되고 보고 싶은 그런 마음. 


아빠는 아빠대로 우리가 걱정된다고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 신다. 그래서 나는 정말 요즘 집-아파트 주차장-학원 주차장-학원-학원 주차장-아파트 주차장-집이라고 이야기했더니 그제야 안심하신다. 


아빠, 우리는 맨날 마스크에다가 손 소독제 가지고 다니면서
조심조심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아빠 사랑해!

(내 글에 항상 '좋아요'를 1등으로 눌러주는 아빠 보고 있지?) 






이렇게 써놓고 보니, 2020년 2월 29일도 나답게 알차게 잘 보냈듯 하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나답게, 재밌게 보내기를.



이 글을 2024년 2월 29일의 나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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