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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Mar 18. 2020

침착함의 미학.

feat. 차 배뤄뤼 방전.

요즘 시대에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 바로 이 세 가지라고 한다.

세 개다 핸드폰 관련된 일이지만, 나는 오늘 차 바테리가 방전되는 일을 겪었다. 


사실 나를 잘 아시는 분들은 내가 차에 대해서 얼마나 예민한지 잘 아실 거다. 차에 조금만 무슨 문제가 생긴다던가 흠집이 난다던가 하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차만 생각하면 겁이 나고 예민해진다. 내 목숨과 직결되어있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나중에 커서 (지금도 다 컸는데;) 꼭 나보다 차에 대해서 잘 알고 운전을 잘하시는 분께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차에 대해서, 운전에 대해서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꿈 꾼다. 


어쨌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출근길에 늘 기분이 좋은 나는 오늘도 기쁘게 출근을 하려던 참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차에 타서 시동을 걸으려는데 시동이 걸리지가 않았다. 곧이어 메시지가 떴다. 배터리가 방전이 되었다고. 아- 48시간 동안은 괜찮아도 그 이상은 꼭 블랙박스 끄라고 하셨는데, 내가 블랙박스를 깜빡하고 안 끈 게 화근이었다. 내가 놀러 나가는 거였으면 불안함을 뒤로하고 침착하게 생각을 했을 텐데, 하필이면 중요한 수업이 줄줄이 잡힌 날이어서 갑자기 멘붕이 왔다. 


이걸 어쩌나.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런 경우에는 어디에다 전화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엄마도 당연히 모르지.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평소에는 잘만 보이던 전화번호들이 하나도 뜨지를 않았다. 그리고 오늘 수업은 당연히 늦을 것 같아서 학원에도 연락을 하고, 메시지를 남기고, 학원 수업 이후에 가야 하는 올소 치과 수업은 수업들이 줄줄이 딜레이가 되다 보니 못할 것 같아서 양해를 구하고 캔슬을 시키고. 마지막 수업은 10시 이후에 하게 되면 내가 한달라이브를 못 보게 될 것 같아서 캔슬하고. 학원 수업 때문에 얼른 출장 바테리 선생님을 불러서 해결은 해야겠고.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처리할게 많아지다 보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우선 침착하기로 했다. 


심호흡을 몇 차례 한 후, 스케쥴러를 꺼내서 펜으로 적기 시작했다. 어떤 수업이 딜레이가 어떻게 되었고, 어떤 수업이 캔슬이 되었고, 어떤 수업이 내일로, 모레로 미뤄졌는지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스케줄이 엉망이었다. 오늘 못한 수업을 내일, 모레, 금요일로 넣자니 기존에 있던 수업 스케줄이 있고. 중간에 짬날 때 훠궈도 한번 먹어줘야 할 것 같고. (엥?)


스케줄을 찬찬히 보면서 정리를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리되었을 때, 네이버에 다시 들어가서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출장 배터리 잘하는 곳을 찾아보니 전화번호가 여러 개가 나왔다. 처음 전화한 곳은 우리 집으로 오는데만 3-40분이 걸린다고 하셔서 일단 보류. 두 번째로 전화한 곳은 10분 거리에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바로 그분께 도움을 요청했고, 오셔서 금방 해결해주셨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 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잘 달려주었고, 생각보다 학원에 그렇게 늦게 도착하지 않아서 기존 수업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끝낼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오늘도 꽤나 불안해했다. 큰 사고가 난 것도 아니었고, 무슨 큰일이 난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불안했다. 차에 대한 불안감이었을까? 아니었다. 달리는 도로에서 멈춘 것도 아니었고, 우리 집 주차장에서 멀쩡히 세워져 있던 차가 시동이 안 걸린 것뿐이었다. 그럼 내가 평소에 차 때문에 겪는 주차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나는 왜 오늘 불안했던 걸까? 


내 불안의 뿌리는 바로 스케줄이 바뀌는 것에 대한 이슈였다. 수업이 딜레이가 되고 캔슬이 되고 다른 날로 잡히는 것에 대한 불안감. 나는 유독 시간 약속을 못 지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심한 편이다. 특히나 내 일적인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늦게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3-40분이면 갈 압구정을 늦어도 1시간 반 전에는 집에서 나선다. 변수라는 것이 늘 존재하고, 고속도로 나가는 길에 사고라도 나면 1시간은 족히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수업을 딜레이 하는 것도 모자라서 캔슬을 해야 한다니. 이건 정말..........................


그래서 나는 불안했던 거였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을 용납하지 못했던 거였다. 


나의 이런 성향을 아주 잘 아시는 원장님께서는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라며 나를 오히려 위로해주셨지만, 그래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다. 48시간 동안 차를 타지 않을 거라면 미리 블랙박스를 끌걸. 바테리 교환을 미리 할걸. 왜 미리 하지 못해서 이 사달이 나게 했을까. 


결과적으로는 모든 스케줄이 잘 풀렸고 큰 문제없이 잘 흘러갔지만, 오늘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프로로써 시간 약속은 아주 중요한 것이고 'if' 란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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