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는 명소 중 하나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플라워 돔이다. 플라워 돔은 지붕과 벽면이 모두 유리로 둘러싸인 거대한 온실로, 일 년 내내 다양한 꽃과 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가 사랑했던 지베르니 자택의 정원을 재현한 특별한 전시회 ‘모네의 인상: 정원(IMPRESSIONS of MONET: THE GARDEN)’이 열리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전시회 후기가 좋아서 나도 리뷰를 읽은 다음 날 그곳에 다녀왔다. 내가 좋아하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과 내가 사랑하는 꽃이 가득한 플라워 돔을 상상하니 하루도 늦출 수 없었다.
티켓은 미리 온라인으로 예매해서 QR 코드로 다운로드해 두었다. 매표소에서 현장 발권도 할 수 있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려면 번거로울 것 같았다. 늦은 오후, 일을 마치고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향했다. 플라워 돔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는데 내 앞뒤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많았다.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싱가포르가 인기 있는 관광지임을 실감했다.
플라워 돔 안으로 들어가니, 바깥의 쨍쨍한 햇볕과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와는 달리실내는 냉방이 잘 되어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유리 사이로 늦은 오후의 햇빛이 들어와 전시장을 부드럽게 비추었다. 전시회는 꽃 전시와 몰입형 체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먼저 ‘모네의 인상: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꾸며진 플라워 필드로 갔다.
전시장 곳곳에 전시된 꽃과 식물들의 이름과 설명이 적힌 패널이 세워져 있었다.
플라워 필드 입구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저 멀리 파란색, 흰색, 보라색 꽃들로 장식된 공간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보니 모네의 대표작인 ‘수련 연못’과 ‘수련 연못 위의 다리’를 재현해 놓은 공간이었다. 정원에는 모네 그림의 복제본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정원과 그림이 연결되는 효과를 주었다. 연못에는 실제로 수련이 있었고 그 주위를 보랏빛 수국이 둘러싸고 있었다. 수국의 꽃받침 위에 작은 구슬 모양의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수국으로 둘러싸인 수련 연못
꽃을 배경으로 인물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그 모습을 보자 전시회에 오기 전날 밤 아들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들은 “엄마가 예뻐서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누가 꽃인지 찾기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아들의 기분 좋은 농담에 웃음이 터졌다. 나는 인물 사진보다는 예쁜 풍경을 찍는 데 집중했다. 사람들이 적은 틈을 타 재빠르게 사진을 찍어 마음에 드는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한참 서서 본 후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을 재현해 놓은 공간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모네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알록달록한 꽃과 식물을 보며 걷는 재미가 있었다. 분홍색 수국, 오렌지색 베고니아, 노란색 금잔화, 흰색 국화, 분홍색 장미, 붉은색 장미, 분홍색 제라늄 등이 초록빛의 관엽식물과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다. 모네의 ‘지베르니의 정원’ 복제본이 이젤에 놓여 있어 꽃과 한데 어우러졌다.
모네의 집으로 가는 길
'지베르니의 정원' 복사본과 꽃밭이 잘 어울렸다.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을 재현한 공간에 다다랐다. 분홍색 벽면과 초록색 창문이 한눈에 들어왔다. 집 입구에는 각양각색의 꽃들과 식물들을 일렬로 심어 모네의 클로드 노르망 정원을 재현해 놓았다. 빨강, 분홍, 노랑 등 여러 색의 장미와 디지털리스, 데이지, 매리골드, 베고니아, 수국, 백합 등이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모네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담은 동상이 다양한 꽃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실제로 정원 근처에서 스케치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도 펜과 스케치북을 가지고 한 번 더 관람하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수련 연못을 보러 갔다.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을 재현해 놓았다.
집 내부로 걸어 들어가면 부엌과 다이닝룸을 볼 수 있다.
모네의 동상
모네의 집 건너편에는 초록색 다리가 있는 수련 연못이 재현되어 있었다. 연못 중앙에는 연한 분홍색과 보라색 수련이 물 위에서 아름답게 피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모네의 집은 전시회에서 가장 근사하고 아름다운 곳이어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사람들이 예쁘게 나오도록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후 모네의 방을 구경하러 갔다.
초록색 다리가 있는 수련 연못을 재현했다.
모네가 구입한 수련을 추적하여 프랑스 농장에서 같은 종의 수련을 들여왔다고 한다.
집 뒤편에는 모네의 방이 재현되어 있었다. 분홍색 방에는 다양한 그림의 액자가 걸려 있었고 분홍색 페튜니아가 걸이 화분에 매달려 있었다. 옆 방은 파란색으로 꾸며져 있었으며 보라색 페튜니아가 걸이 화분에 드리워져 있었다. 각 방에는 소파가 있었는데 소파에 앉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집 내부에는 모네의 부엌과 다이닝룸이 재현되어 있었다. 부엌에는 1800년대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구리 냄비와 그릇들이 파란 타일로 장식된 벽에 걸려 있었다. 모네의 정원을 다 돌아본 후에는 ‘모네의 인상: 체험’ 공간으로 이동했다.
분홍색 방
파란색 방
부엌
다이닝룸
두꺼운 암막 커튼을 열자 어둑한 실내에 관람객들이 푹신한 콩의자나 쿠션에 편안히 앉아 있었다. 나도 콩의자 하나를 찾아 앉았다. 인조 잔디 매트를 깔아 자연의 느낌을 주려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모네와 그의 동시대 인상주의 화가들(르누아르, 폴 세잔, 에드가 드가, 카미유 피사로 등)의 작품을 360도 프로젝션으로 빛, 색상, 소리 등을 느껴보는 다감각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모네의 수련이 벽면에 투영되었을 때 아름다웠다. 연못 수면에 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들으며 30분 동안 몰입형 체험을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몰입형 체험, 모네 '바위섬의 풍경'
모네 '건초 더미'
모네, '수련'
모네, '수련'
모네, '수련'
몰입형 체험을 한 후 몰입형 갤러리 공간으로 이동했다. 후각을 자극하는 자연의 향기를 맡으며 갤러리를 거닐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 복제본을 천천히 감상했다. 마지막으로 기념품 가게를 둘러본 후 출구로 향했다.
갤러리로 가는 길,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한 정보 패널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품 가게
각종 기념품들
정원 예술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모네의 인상: 정원’전시회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팔레트에 물감을 짜놓은 듯 다양한 색의 화초와 식물이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1800년대 후반 모네가 구입한 것과 같은 수련 종을 프랑스 농장에서 직접 공수해 이곳에 심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이번 전시회는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몰입형 체험을 통한 휴식과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완벽한 경험이었다.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한 겉보기식 전시회가 아니라, 모네의 정원과 예술의 본질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며칠이 흘렀지만 아직도 가슴속에 잔잔한 여운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