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정원으로 유명하다.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꼭 들르는 명소 중 하나다. 현재 이곳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썩이고 있다. 12월 한 달 동안 크리스마스 원더랜드 이벤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며칠 전, 딸과 함께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다녀왔다. 미리 온라인으로 크리스마스 원더랜드티켓을 예매해 두었다. 티켓 가격은 날짜에 따라 $8(약 8,000원), $10(약 10,000원), $12(약 12,000원)으로 달랐다. 입장 시간은 6시 반, 7시 반, 8시 반, 9시 반 중 선택할 수 있었고, 나는 7시 반 티켓을 구입했다. 퇴장 시간이 자유로워서 일찍 입장해 저녁을 먹고 여유롭게 이벤트를 즐길 계획이었다.
출처: Christmas Wonderland Singapore Homepage
집에서 6시 반쯤 출발했다. 지하철을 타고 베이프런트(Bayfront) 역에서 내렸다. B출구로 나오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우산을 샀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 쉽게 나설 수 없었다. 딸과 함께 지하철역 출구에 서서 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빗줄기가 조금 약해진 틈을 타 우산을 함께 쓰고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걸어갔다. 약 20분쯤 걸으니 크리스마스 원더랜드 입구가 보였다. 휴대폰에 미리 다운로드해 둔 모바일 티켓의 QR코드를 스캔하고 입장했다. 비가 와서인지 입장객이 평소보다 적었고, 기다림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스펠리에라(Spalliera)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웅장한 스펠리에라였다. 이탈리아 성을 모티브로 한 이 설치물은 약 20m 높이로, 2층 버스 다섯 대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탈리아 장인들이 하나하나 정교하게 수작업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각양각색의 LED 전구들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작년에 왕관 모양으로 장식된 스펠리에라보다 올해 성 모양의 스펠리에라가 훨씬 더 웅장하게 느껴졌다.
딸과 나는 여러 각도에서 스펠리에라의 외관을 감상한 후, 내부로 들어갔다. 작년에는 포인세티아로 장식된 작은 정원이 있었는데, 올해는 내부가 비어 있었다. 조화롭게 배치된 다양한 문양이 아름답고 우아했다. 화려한 색감과 정교한 디자인에 흠뻑 빠져들었다. 스펠리에라를 배경으로 딸과 셀카를 찍으려던 순간, 딸이 살짝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내 얼굴만 커다랗게 나왔다. 딸은 “엄마 얼굴 진짜 크게 나왔네!”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진 속 내 얼굴은 정말 달덩이 같았다.
스펠리에라 내부
곧 슈퍼트리 쇼가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슈퍼트리는 나무 모양의 초대형 조형물로,높이가 약 25-50m에 이른다. 정원에는 12개의 슈퍼트리가 모여 있다. 12월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7시 45분, 8시 45분, 9시 35분에 15분 동안 슈퍼트리 쇼가 펼쳐진다.
저녁 7시 45분 정각이 되자, 슈퍼트리에서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에 맞춰 슈퍼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들이 춤을 추었다. 밤하늘과 구름, 그리고 슈퍼트리의 불빛이 어우러져 마치 초현실적인 세계에 있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여러 번 슈퍼트리 쇼를 봤지만, 매번 감동과 놀라움을 느낀다. 특히 추석 무렵, 문리버(Moon River)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쇼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슈퍼트리 쇼
슈퍼트리 쇼가 끝나자, 스펠리에라 안에서 가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인공 눈을 만드는 기계에서 눈송이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하게 내리던 눈이 점차 강하게 내렸다. 마치 진짜 눈이 펑펑 내리는 듯한 장관이 펼쳐졌다. 바닥에도 하얀 눈이 쌓였다. 사람들은 머리와 옷 위로 내려앉는 눈을 맞으며 즐거워했고,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하얀 눈이 깔린 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싱가포르는 열대 지방이라 실제 눈을 보기 힘든 만큼, 가짜 눈이라도 사람들은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듯했다.
한여름에 내린 눈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비가 잦아들자 딸과 나는 간단히 저녁을 먹기 위해 식음료 매장을 둘러보았다. 햄버거 세트를 사서 빈 테이블에 앉았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는 대기줄도 길고 자리 찾기도 어려웠지만, 이번에는 비가 와서인지 한적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홀리 로저(Holy Roger) 선박을 구경하러 갔다. 24m 길이의 선박은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멋진 선박을 배경으로 딸과 함께 셀카 몇 장 찍었다.
푸드 존
사슴이 끄는 산타마차
홀리 로저(Holly Roger) 선박
이후, 딸이 손꼽아 기다리던 카니발 게임을 하러 갔다. 작년에도 고리 던지기 게임에 도전했지만, 40개를 던지고도 하나도 유리병에 걸리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올해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도 $10(약 9,800원)을 내고 고리 40개를 받았다. 딸과 나는 20개씩 나누어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38개의 고리가 모두 바닥에 떨어졌고, 단 2개만 남았다. 내가 던진 고리는 또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고리는 딸이 던졌다. 놀랍게도 그 마지막 고리가 유리병에 대롱대롱 걸렸다! “엄마! 엄마! 나 고리 걸었어요!" 딸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와, 우리 딸 정말 잘했어!” 나도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직원들은 종을 뎅뎅 울리며 축하해 주었다. 딸은 보라색 곰 인형을 상품으로 받았다.
고리 던지기 게임, 정중앙에 있는 유리병에 빨간 고리가 걸렸다.
빛의 터널을 거닐었다. 매혹적인 LED 조명이 터널을 환상적으로 밝혀 주었다. 터널을 지나 산타클로스와의 만남의 장소로 향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입장객들과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산타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잠시 서서 구경한 뒤 메리 레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년에는 장난감 병정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올해는 귀여운 눈사람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았다.
산타와의 만남
메리 레인
진저 브레드 하우스
미슬토 앨리 마켓
어느덧 밤 10시가 되었다. 저녁 7시 반에 입장해서 천천히 구경하고, 저녁도 먹고, 게임도 즐기다 보니 2시간 반이 금세 흘러갔다. 출구로 나와 다시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물기를 머금은 밤공기가 촉촉하게 느껴졌다. 나무와 꽃향기를 맡으며 공원길을 걸었다. 은은한 달빛이 우리를 비추어 주었다. 눈도 오지 않고 찬바람도 불지 않았지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원더랜드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딸과 함께 한 시간도 선연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