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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Dec 11. 2023

싱가포르, 크리스마스 원더랜드 2023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밤 나들이를 다녀왔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정원으로 유명하다. 싱가포르를 방문한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관광 명소 중 하나다. 현재 이곳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썩이고 있다. 12월 한 달 동안 크리스마스 원더랜드 이벤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며칠 전 딸과 함께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다녀왔다. 일찌감치 온라인으로 크리스마스 원더랜드 티켓을 예매해 두었다. 티켓 가격은 날짜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어 있었는데 $8, $10, $12(약 7,800, 약 9,800원 약 12,000원)이었다. 입장 시간은 4회로 나뉘어 있었다. 6시 반, 7시 반, 8시 반, 9시 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6시 반 티켓을 구입했다. 퇴장 시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일찍 입장하면 저녁을 먹은 후 유롭게 이벤트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출처: Christmas Wonderland Singapore Homepage


집에서 5시 반쯤 떠났다. 지하철을 타고 베이프런트(Bayfront)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B출구로 나와 보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편의점에 가서 우산 하나를 샀다. 빗줄기가 세서 선뜻 나갈 수가 없었다. 딸과 함께 지하철역 출구에 서서 비가 조금 잦아들길 기다렸다. 잠시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 우산을 나눠 쓰고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향해 걸었다. 20분쯤 걸으니 크리스마스 원더랜드 출입구가 보였다. 휴대폰에 미리 다운로드해 놓은 모바일 티켓 QR코드를 스캔하고 입장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입장객들이 평소보다 적었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갔다.


스펠리에라(Spalliera)


맨 먼저 웅장하게 솟아 있는 스펠리에라가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 성을 모티브로 한 이 설치물은 높이가 20m(2층 버스 다섯 대 높이)에 다다른다고 한다. 이탈리아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정교하게 제작했다고 한다. 각양각색의 LED 전구를 사용하여 눈부시게 화려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왕관을 모티브로 한 작년 스펠리에라보다 성을 모티브로 한 올해 스펠리에라가 나는 더 웅대하게 느껴졌다.


딸과 나는 여러 위치에 서서 스펠리에라의 외관을 감상한 후 설치물 내부로 들어갔다. 작년에는 내부에 포인세티아 꽃으로 장식된 작은 가든이 있었는데 올해는 내부가 비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조화롭게 배치된 다양한 문양을 감상했다. 아름답고 우아했다. 색감도 화려했다. 수려한 경관에 흠뻑 취했다. 스펠리에라를 배경으로 딸과 셀카를 찍었다. 휴대폰을 들고 셀카를 찍으려는 순간, 딸이 내 뒤로 살짝 물러서는 바람에 내 얼굴만 커다랗게 나왔다. 딸은 “엄마 얼굴 진짜 크게 나왔네!”라고 감탄하면서 깔깔 웃었다. 사진 속 내 얼굴은 진짜 달덩이처럼 보였다.


스펠리에라 내부


곧 슈퍼트리 쇼가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슈퍼트리는 나무 모양의 초대형 조형물이다. 높이가 약 25-50m로 다양하다. 정원에는 이러한 슈퍼트리 12그루가 모여 있다. 12월 한 달 동안에는 매일 저녁 7시 45분과 8시 45분, 9시 35분에 15분 동안 슈퍼트리 쇼가 펼쳐진다.


저녁 7시 45분 정각이 되자, 슈퍼트리에 설치되어 있는 조명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신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에 맞춰 슈퍼트리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빛들이 춤을 추었다. 밤하늘과 구름, 슈퍼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이 하나로 어우러져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선사했다. 마치 초현실 세계 어딘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여러 차례 슈퍼트리 쇼를 관람했지만 매번 볼 때마다 놀라움과 감동이 가득하다. 특히 추석 무렵 문리버(Moon River) 노래에 맞춰 공연하는 슈퍼트리 쇼는 정말 아름답고 우아하다.


슈퍼트리 쇼


슈퍼트리 쇼가 끝나자, 스펠리에라 내부에 가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인공 눈 만드는 기계에서 가짜 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하게 나오던 가짜 눈이 점점 강하고 세게 뿜어져 나왔다. 정말로 눈이 펑펑 내리는 것 같았다. 바닥에도 가짜 눈이 하얗게 덮였다. 모두들 눈을 맞으며 아주 즐거워했다. 머리에도 옷에도 새하얀 가짜 눈이 잠시 내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짜 눈이 쌓인 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싱가포르는 열대 지방이라 눈이 내리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 눈 구경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가짜 눈이 내려도 그토록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한국처럼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서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에 내린 눈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잔잔하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식음료 매장을 둘러보았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햄버거 세트를 샀다. 빈 테이블을 쉽게 찾았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는 입장객들이 많아서 음식을 사는 것조차 어려웠다. 대기줄도 길었고 빈자리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가 세차게 오는 바람에 입장객들이 많지 않아서 편하게 음식도 사고 자리도 잡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홀리 로저(Holy Roger) 선박을 구경하러 갔다. 24m 길이의 선박은 눈부시게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선박을 배경으로 셀카 몇 장을 찍었다.


푸드 존


사슴이 끄는 산타마차


홀리 로저(Holly Roger) 선박


드디어 딸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카니발 게임을 하러 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고리 던지기 게임에 도전했다. 작년에 40개의 고리를 던졌는데도 하나도 유리병에 걸리지 않아서 실망이 컸다. 개구리 인형을 얻고 싶었는데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번에도 $10(약 9,800원)을 내고 고리 40개를 받았다. 딸과 20개씩 나눠 가졌다. 38개는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 단 2개가 남았다. 내가 던진 고리는 또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딸이 마지막 남은 고리를 던졌다. 올해도 빈손으로 돌아가겠구나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딸이 마지막으로 던진 고리가 유리병에 대롱대롱 걸렸다! “엄마! 엄마! 나 고리 걸었어요!”라고 외쳤다. “와, 우리 딸 잘했어!” 내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직원들은 종을 뎅뎅뎅뎅 치며 축하해 주었다. 딸은 상품으로 보라색 곰 인형을 받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을 실감했다.


고리 던지기 게임, 정중앙에 있는 유리병에 빨간 고리가 걸렸다.


빛의 터널을 거닐었다. 매혹적인 LED 조명이 터널을 환상적으로 밝혔다. 터널 밖으로 나와서 산타클로스 만남의 장소로 향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옆에 앉은 입장객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산타 복장을 하고 있으면 힘들 것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잠시 서서 구경하다가 메리 레인으로 갔다. 작년에는 장난감 병정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는데 올해는 귀여운 눈사람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았다.


산타와의 만남


메리 레인


진저 브레드 하우스


미슬토 앨리 마켓


어느덧 밤 10시가 되었다. 저녁 7시 반쯤 입장해서 천천히 구경하고, 저녁을 먹고, 게임도 하다 보니 2시간 반이 금세 흘렀다. 출구로 나와서 다시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물기를 머금은 밤공기가 촉촉하게 느껴졌다. 나무 향과 꽃향기를 맡으며 공원길을 걸었다. 은은한 달빛이 우리를 비추어 주었다. 눈도 오지 않고 찬바람도 불지 않았지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원더랜드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딸과 함께 한 시간도 선연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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