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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Nov 05. 2023

싱가포르 건강식, 삼수이 진저 치킨

내가 즐겨 먹는 닭고기 양상추쌈


평소에 나는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갱년기를 겪고 있어 심혈관 질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이라 원하는 대로 먹으면 안 된다. 혈압 관리와 체중 감량이 필요하다. 남편과 나는 먹는 걸 무척 좋아하지만, 건강을 위해 절제하려고 애쓴다. 포화지방이 적고 식이섬유가 부한 음식을 주로 먹는다. 통곡물, 과일, 야채, 견과류, 올리브유 등을 매일 섭취하고 있다.


외식할 때도 메뉴 선택에 신중을 기한다. 싱가포르 대표 음식인 락사는 매콤한 국물에 코코넛 밀크와 새우 등을 넣어 만든 국수다. 코코넛 밀크는 영양가가 많지만, 지방과 칼로리도 높다. 나시르막은 코코넛 밀크로 지은 밥에 멸치튀김, 닭튀김, 오이 등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이 음식도 역시 칼로리가 높다. 아침에 즐겨 먹는 카야토스트는 식빵에 코코넛, 달걀, 팜슈가로 만든 카야잼을 바르고, 그 위에 버터 두 조각을 얹어 구운 것이다. 싱가포르 로컬 커피는 연유나 설탕이 들어가 달달하다. 이처럼 칼로리와 당분 함량이 높은 음식이 많다. 외식할 때마다 이런 단짠단짠한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마음껏 먹고 나면 후회가 남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열량과 나트륨 함량이 적은 메뉴를 선택하려고 다.


자주 먹는 외식 메뉴 중 하나는 삼수이 진저 치킨(Samsui Ginger Chicken)이다. 이 음식은 아직 한국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삼수이 진저 치킨은 1930년대 싱가포르 건설 초기, 중국 광둥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삼수이 여성들이 정월 초하루에 먹던 명절 음식이다. 한약재를 넣어 끓인 육수에 닭을 삶아 살만 발라내고, 진저 소스(생강 소스)와 함께 먹는다. 닭은 부와 명예를 상징하고,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기 때문에 삼수이 여성들이 건강을 위해 먹었던 음식이라고 한다(참고 자료:

CNA Luxary by Annette Tan, 12th Jan 2022).


중국풍으로 꾸며진 식당


며칠 전 비보 시티(Vivo City)에 있는 숩 레스토랑(Soup Restaurant)에 갔다. 5시가 채 되지 않아서 손님들이 많지 않았다. 멀리 센토사(Sentosa) 섬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파란 하늘과 초록빛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늘 시키는 메뉴가 있어서 직원에게 곧바로 주문했다. 삼수이 진저 치킨 큰 사이즈 하나, 삼발 캉콩 하나, 클레이팟 두부 하나, 재스민밥 두 공기와 국화차를 주문했다. 두 명이 먹을 경우 삼수이 진저 치킨 작은 사이즈로도 충분하지만, 나는 늘 큰 사이즈로 주문한다. 차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주로 국화차를 주문한다. 재스민차는 시간이 지나면 씁쓸해져서 리필해 줘도 잘 안 마시게 된다.


저 멀리 센토사 섬이 보인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직원이 큰 접시에 가지런히 담긴 닭고기와 진저 소스(생강 소스), 신선한 양상추를 테이블 위에 놓아주었다. 먼저 물티슈로 손을 깨끗이 닦았다. 삼수이 진저 치킨은 양상추 한 장에 닭고기와 오이, 진저 소스를 넣어 쌈을 싸서 먹으면 된다. 18년 전 처음 이 음식을 먹었을 때 상추 대신 양상추에 싸 먹는 게 낯설었다. 하지만 한번 먹어 보니 아삭아삭한 양상추의 식감이 참 좋았다. 진저 소스와 양상추는 요청 시 리필해 준다. 남편과 나는 보통 양상추와 진저 소스를 한두 번 더 리필해서 먹는다. 국화차 직원분이 알아서 리필해 주신다.


삼발 캉콩(Sambal Kang Kong), 삼수이 진저 치킨(Samsui Ginger Chicken), 클레이팟 두부(Claypot Tofu)


양상추에 닭고기와 오이, 진저 소스를 넣어 쌈을 싸 먹는다.


삼수이 치킨은 담백하고 맛이 좋다. 무엇보다 살코기가 부드럽다. 가슴살도 있는데 퍽퍽한 느낌이 전혀 없다. 닭육수와 참기름 등에 생강을 듬뿍 넣어 만든 진저 소스가 닭고기의 풍미를 한층 더 살려준다.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닭고기를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


남편과 나는 쉴 새 없이 양상추에 닭고기와 오이  쌈을 싸 먹었다. 조금 후에 삼발 캉콩이 나왔다. 삼발 캉콩은 약간 매콤한 삼발 소스에 물시금치를 넣어 볶은 음식이다. 칠리 파디라는 고추가 들어가 알싸한 맛이 난다. 마치 흰밥에 겉절이를 얹어 먹는 느낌이었다. 뚝배기에 담겨 나온 두부조림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간장에 조린 두부가 아주 부드러웠다.


삼발 캉콩(Sambal Kang Kong)


클레이팟 두부(Claypot Tofu)


어느새 닭고기가 몇 조각만 남았다. 남편이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더 먹으라고 몇 번 말했지만 남편은 충분히 먹었다며 나에게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양상추 한 장을 뜯어 손에 올렸다. 닭고기와 오이를 얹은 후 진저 소스를 넣으려는 순간, 남편이 소스가 담긴 그릇을 내 앞으로 슬며시 기울여 주었다. 닭고기가 몇 조각 남지 않아 진저 소스를 리필하지 않았는데, 내가 뜨기 편하도록 그릇을 기울여 준 것이다. 남편은 내가 쌈을 쌀 때마다 소스 그릇을 기울여 주었고, 마지막 남은 소스를 싹싹 긁어 내 쌈에 넣어 주었다. 볶은 야채도 밥 위에 척척 올려줬다. 


국화차 한 잔을 더 마셨다. 따끈한 차를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이제 둘만의 외식이 익숙하다. 무엇을 먹든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건강한 식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오후 6시쯤 되자 한산했던 식당에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찍 먹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다.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내려갔다. 저 앞에 유명한 초콜릿 디저트 가게가 보였다. 남편에게 너무 달지 않은 걸로 하나 먹고 가자고 했다.


다크초콜릿 아이스크림 하나와 70% 카카오가 든 핫초콜릿을 주문했다. 계산을 하는 동안 주문대 옆에 놓인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유혹을 참기 어려웠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크렘브륄레까지 주문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크렘브륄레를 먹으니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입에 착착 감겼다. “아, 어떡해. 망했다...”라고 말하면서도 참 맛있게 먹었다. 씁쓸한 핫초콜릿과 잘 어울렸다. "진짜 맛있다..."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났다.


카카오 파우더를 사용하지 않고 초콜릿바를 녹여 핫초콜릿을 만든다.


70% 카카오로 만든 핫초콜릿, 다크초콜릿 아이스크림, 크렘브륄레


이른 저녁을 먹었더니 밤이 되자 약간 배가 고팠다. 블루베리와 견과류 조금 먹었다. 음식의 천국, 싱가포르에서 다이어트는 쉽지 않다. 가끔 기름지고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자주 먹을 수 없다. 입이 즐거운 음식을 멀리하고, 몸이 즐거운 음식을 찾으려면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가능한 한 평일에는 집밥을 먹고, 주말에는 외식을 하되 건강한 메뉴를 선택하려고 한다. 건강한 오늘이 모여 건강한 내일을 만든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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