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친구들과 함께한 웃음 가득 설 모임 '로헤이'

재미있고 독특한 방식으로 먹는 샐러드, 鱼生

줌바 클래스에서 친해진 싱가포르 친구들과 설 모임을 가졌다. 운동할 때 항상 "으쌰으쌰"하며 밝은 에너지를 주고받던 친구들과 처음 가진 사적인 모임이었다. 대부분이 중국계 싱가포르인들로, 동네 커뮤니티 센터가 오픈한 이후 약 7년째 함께 운동해 왔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운동복을 입은 모습만 봐도 살이 빠졌는지, 근육이 생겼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음식은 케이터링으로 주문했지만, 내가 한국 음식을 하나 더 준비해 가면 모두가 좋아할 것 같았다. 메뉴는 고민 끝에 잡채로 결정했다. 전날 재료를 미리 준비했다. 불고기를 재워 놓고, 당면도 사놓았다. 아침에 20인분의 당면을 모두 삶아 양념을 했고, 소고기, 버섯, 당근, 양파, 어묵, 시금치도 각각 볶거나 데쳐서 준비했다. 큰 그릇에 재료들을 담아 참기름과 깨를 넉넉히 넣어 버무렸다. 맛을 보니 당면이 잘 삶아져 탱글탱글 하고, 간도 잘 맞았다. 직사각형 서빙 그릇에 수북하게 담았다.

설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을 선택했다. 평소에 거의 입지 않는 핑크와 빨간색 꽃무늬 통바지와 하얀색 민소매를 골라 입었다. 빨간색 귀걸이도 착용했다. 다들 빨간색이나 분홍색, 주황색 톤의 옷을 입을 것 같아 나도 비슷한 분위기로 맞췄다.

함께 한 친구들

잡채를 들고 모임 장소로 향했다. 이미 많은 친구들이 와 있었고, 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주문한 음식이 막 배달되었다. 인도식 카레, 왕새우찜, 익힌 야채, 중국식 만두, 구운 돼지고기, 쌀국수, 캘리포니아롤 등 싱가포르 사람들이 케이터링을 할 때 자주 주문하는 메뉴였다. 디저트로는 과일 주스, 과일 화채, 설에 먹는 과자류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잡채 그릇을 테이블 한쪽에 올려놓자 친구들이 “와우, 잡채!”라며 환호했다. 잡채는 이미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음식이고,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로스트 포크, 만두, 왕새우찜, 카레, 익힌 야채, 쌀국수, 캘리포니아롤, 잡채

내가 만들어 간 잡채(왼쪽)

개인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했던 잡채가 테이블에 올라와 모두들 정말 기뻐했다. “오우, 잡채다! 앤젤라, 네가 직접 만든 거야? 나 잡채 진짜 좋아하는데. 와, 정말 맛있겠다!”라며 다들 잡채를 맛봤다. 나도 골고루 다른 음식을 담고 잡채는 조금만 담았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운동할 때도 대화를 많이 하지만, 밥을 함께 먹으니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 한국 드라마, 한국 음식, 한국 여행 등 한국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한 친구는 카페 창업을 위해 한국의 유명 카페를 벤치마킹하려고 한 달 동안 한국에 다녀왔다고 했다. 제주도 골프 여행, 올레길 트래킹, 설악산 등산, 속초 스키 여행 등 다양한 테마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의 명절인 설날과 추석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한국에 호의를 가지고 있어서 마치 내가 스타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에게 설 연휴 동안 뭘 했는지 물어보니, 친정 모임과 시댁 모임에 참석하고 친척들을 만났다고 했다. 연휴 동안 달달한 음식을 많이 먹어 살이 쪘다며, 다들 뱃살을 꼬집으며 웃었다.

아몬드 젤리와 롱간이 들어간 화채, 과자류, 초콜릿, 귤 등

배는 불렀지만 디저트를 조금 가져오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나는 웃음이 터졌다. 한 친구가 잡채 그릇을 비스듬히 들고 있었고, 다른 두 명이 포크로 남은 잡채를 긁어 개인 접시에 담고 있었다. 테이블에 가 보니 당면 한 가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조금 번거로웠지만 잡채를 만들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저트 테이블에서 아몬드 젤리와 롱간이 들어간 과일 화채를 담아 왔다. 과자와 귤도 담아 왔다.

잠시 후, 모임의 리더가 “자, 모두 이 테이블로 오세요!”하고 외쳤다. 그날 모임의 하이라이트인 ‘위셩(鱼生)'을 먹을 시간이 된 것이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설에 꼭 '위셩'이라 불리는 생선 샐러드를 먹는다. 생선을 뜻하는 ‘위(鱼)'가 ‘번영과 활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위셩에 사용되는 재료는 대략 10여 가지다. 얇게 썬 생선회, 얇게 채 썬 당근, 무, 오이, 감귤 껍질, 멜론, 포멜로, 다진 땅콩, 튀긴 만두피 등의 재료와 다양한 양념과 소스가 들어간다.

위셩(생선 샐러드) 

모두들 테이블 주위로 빙 둘러 서서 재료를 하나씩 넣을 접시에 넣을 때마다 축복의 말을 했다. 예를 들면 생선회를 넣으며 “니엔니엔요위! (매년 풍요롭기를!), 포멜로를 넣으며 “따지따리! (행운과 번영을!)”, 채를 썬 무를 넣으며 “부부까오셩! (사업 번창과 직장 승진을!), 자두 소스를 뿌리며 "티엔티엔 미미! (삶이 달콤하고 사랑으로 가득 차길!)"등 외쳤다.

재료를 모두 넣은 후 리더가 “자, 다들 젓가락 준비됐죠? 꽁시파차이!(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외치자, 모두들 “완쓰루이!(뜻한 바 이루어지길!), 션티찌엔캉!(건강하길)!”등 여러 축복의 말을 외치며 젓가락으로 위셩을 높이 들어 섞었다. 이렇게 위셩을 높이 던져 섞는 행위를 ‘로헤이’라 부르는데, 높이 들어 올릴수록 더 많은 복이 온다고 했다. 모두들 신이 나서 젓가락으로 위셩을 던졌고, 테이블은 난장판이 되었다. 7번 정도 섞은 후, 나눠 먹었다. 맛은 달콤했지만 오묘한 맛이 났다.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나도 두 접시나 먹었다.

로헤이 시작하기 직전

로헤이

오후 일정이 있어 그쯤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밤 단톡방에 "네가 와줘서 모임이 더 특별해졌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잡채가 정말 맛있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도 이어졌다. 그날 찍은 사진과 동영상도 여러 장 올라와 있었다. 메시지를 읽고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이 흐뭇했다. 중국 문화에 흠뻑 빠져 즐긴 설 모임은 로헤이의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 덕분에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다.

영어와 중국어가 혼재하는 공간에서 그들의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놀이를 했다. 그들의 관습과 표현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를 반겨 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한국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감해 준 덕분에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서로의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