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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Jun 06. 2023

첫 월급을 받은 아들과 딸이 깜짝 선물을 주었다

기쁘고도 마음 아프다

 

대학생인 아이들이 싱가포르 현지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시작해서 8월 초까지 여름 방학 3개월 동안 근무하는 조건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아이들은 지난 학기에 미리 관심 있는 회사 여러 곳에 이력서를 내고 몇 차례에 걸쳐 면접을 봤다. 학기 중에 공부하면서 인턴십까지 찾느라 부단히 애쓴 것 같았다. 아직 저학년인 아이들이 인턴으로 채용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운이 좋게 두 아이들 모두 전공 관련 회사에 채용되었다. 아들은 IT 스타트업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고 딸은 회계법인 회계감사팀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을 했다. 단기 알바 경험은 있지만 회사에서 근무하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잘해 나가고 있다. 아들은 인턴 기간 동안 끝낼 수 있는 작은 프로젝트 맡아서 하는 중이다. 상사와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진행 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의논한다. 아들의 회사는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어서 재택근무를 할 때가 많다. 팀 미팅이 있을 때나 소프트웨어 전시회가 있을 때 회사에 간다. 재택근무를 하니 체력적인 소모는 적다고 볼 수 있다. 딸은 매일 회사에 출근한다. 혼잡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딸이 좀 안쓰러워 보인다. 다행히 일을 찬찬히 잘 가르쳐 주는 상사들을 만나서 제대로 회계감사 업무를 배우는 중이다. 하루 종일 숫자를 보면 피곤할 것도 같은데 적성에 맞고 재미있다고 한다.     


며칠 전 아이들이 첫 월급을 받았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처음, 월급을 받은 것도 처음이라 정말 많이 좋아했다. 통장에 찍힌 SAL(Salary의 약자)를 보며 아이들은 참 뿌듯해했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식비와 교통비를 빼고 용돈으로 쓰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이 첫 월급을 받았다고 했을 때 나도 무척이나 기뻤다. 혹시라도 중도에 포기할까 봐 걱정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어젯밤 가족들이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아들이 외출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딸기케이크 한 통을 사 왔다. 평소에는 잘 사지 않는 유명 호텔 베이커리 케이크였다. 디자인도 세련되고 딸기도 속까지 꽉 차 있었다. 케이크를 잘라 한 조각씩 개인 접시에 올렸다. 아이들은 예쁜 봉투 두 장을 아빠에게 내밀었다. 투 안에는 $100(약 10만 원)씩 들어 있었다. 남편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내게는 하얀 종이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종이가방 안에는 짙은 색의 선글라스가 들어 있었다. 선글라스를 써 보니 사이즈가 잘 맞았다. 아치형 테두리도 내 얼굴에 잘 어울렸다. 나는 너무 기뻐서 온 집에 불을 환히 켜고 선글라스를 쓰고 돌아다녔다. 남편과 나는 정말 감격했다.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해 주었다.     


아들이 사 온 딸기케이크


남편이 받은 용돈 봉투 (각 $100씩 들어 있다)


내가 받은 선글라스 (요즘 유행하는 선글라스라고 한다)


나는 아이들이 지난 한 달 동안 인턴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게 뭔지 궁금했다. 먼저 아들에게 물었다.      

“한 달 동안 일해 보니 어때?”

“돈을 버는 게 힘드네요. 아빠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돈을 버는지 조금 알겠어요. 일은 재미있어요. 팀 프로젝트에서 제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고 마감 시간에 맞춰 제출해야 하는 부담은 있어요.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배워가며 일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어요. 재택근무를 하고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건 좋아요.”     


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인턴으로 일하면서 어떤 걸 느꼈어? 매일 회사에 다니는 게 힘들지 않아?”

“제일 힘든 거는 출퇴근을 하는 거예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어요. 회사에서 일하는 건 괜찮아요. 아주 큰 회사가 아니어서 오히려 일을 잘 배우고 있어요. 회계감사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내년에 다른 회사에 지원할 때도 이번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매일 점심 먹는 데 돈을 쓰는 게 좀 아까워요. 인턴 월급을 하루치로 나눠보면 얼마 되지 않아서 비싼 점심은 안 먹어요.


“회사 사람들과 관계는 어때? 어려움은 없어?”

“모두들 인턴들에게 잘해 줘서 괜찮아요. 밥도 자주 사 주시고 친절하게 대해 줘요. 지난번에 다른 회사에 외근을 나갔을 때 그 회사 직원이 짜증을 많이 내서 당황했던 적은 있었는데 그 이외에는 괜찮아요. 아, 그리고 중국어를 좀 더 공부해야겠어요. 업무는 영어로 하지만 일상대화를 할 때 거의 중국말로 해요. 깊은 대화를 할 때는 제가 잘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어서 중국어 공부를 더 해야겠어요.”     


내 눈에는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아이들이 이제 다 자란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이제 노동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맛보았다. 인턴 경험만으로는 노동의 가치를 알기 어렵겠지만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할 때는 꼭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생각하며 일했으면 한다. 일을 해서 얻는 대가가 무엇인지, 돈 이외에 얻는 게 있는지,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과 맞바꿀 만큼 가치가 있는지 늘 염두에 두고 일했으면 한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하지만 결코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밥값을 아끼고 싶어서 회사 근처 호커센터(노점 식당)에서 $5(약 5천 원) 이내의 밥을 찾아 사 먹는다는 딸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묵직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소중한 돈으로 나와 남편을 위해 선물도 사고 용돈도 준비한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고맙다. 아이들에게서 용돈을 받으면 마냥 기쁠 줄만 알았는데 애틋한 마음이 들어 눈가가 촉촉해진다. 마음 한편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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