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여울 Feb 23. 2024

싱가포르 친구들과 함께 한 웃음 가득 설 모임

재미있고 독특한 방식으로 먹는 샐러드, 鱼生


줌바 클래스에서 친해진 싱가포르 친구들과 설 모임을 가졌다. 운동할 때 항상 "으쌰으쌰"하며 밝은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친구들과 처음 가진 사적인 모임이었다. 대부분이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다. 동네 커뮤니티 센터가 오픈한 이후부터 약 7년째 계속 같이 운동해 왔기 때문에 서로 잘 알고 지낸다. 운동복을 입은 모습만 봐도 살이 조금 빠졌는지, 근육이 조금 빠졌는지, 아니면 더 붙은 건지 대충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음식은 케이터링으로 주문했다. 내가 한국 음식을 하나 더 해 오면 모두들 좋아할 것 같았다. 뭘 해 갈지 생각하다가 잡채로 결정했다. 잡채 재료는 전날에 미리 준비해 두었다. 불고기를 재워 놓고 당면도 사놓았다. 아침에 20인분 용 당면을 모두 삶은 후 양념을 했다. 소고기, 버섯, 당근, 양파, 어묵, 시금치도 각각 볶거나 데쳐서 준비했다. 둥글넓적한 그릇에 넣고 슬슬 버무렸다. 참기름을 넣고 깨를 넉넉하게 뿌려 주었다. 맛을 보니 괜찮았다. 당면이 잘 삶아져서 탱글탱글 했고 잡채 간도 잘 맞았다. 직사각형 서빙 그릇에 수북이 담았다.


옷을 골라 입었다. 평소에 거의 입지 않는 핑크와 빨간색 꽃무늬가 있는 통바지를 선택했다. 하얀색 민소매와 맞춰 입으니 잘 어울렸다. 빨간색 귀걸이도 착용했다. 설 모임이라 다들 빨간색이나 분홍색, 주황색 톤의 옷을 입을 것 같아서 나도 비슷한 분위기로 맞춰 입었다.


함께 한 친구들


준비해 둔 잡채를 들고 모임 장소로 향했다. 이미 많이들 와 있었다. 흥겨운 설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주문한 음식이 막 배달되었다. 인도식 카레, 왕새우찜, 익힌 야채, 중국식 만두, 구운 돼지고기, 쌀국수, 캘리포니아롤 등 싱가포르 사람들이 케이터링을 할 때 흔히들 주문하는 메뉴였다. 디저트로 과일 주스, 과일 화채, 설에 먹는 과자류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포장해 온 잡채 그릇을 꺼내 테이블 한쪽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와우, 잡채!”라고 하며 환호했다. 잡채는 이미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음식이고, 싱가포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로스트 포크, 만두, 왕새우찜, 카레, 익힌 야채, 쌀국수, 캘리포니아롤, 잡채


내가 만들어 간 잡채(왼쪽)


개인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모두 예상하지 못한 잡채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어서 아주 기뻐했다. “오우, 잡채다! 앤젤라, 네가 직접 만든 거야? 나 잡채 진짜 좋아하는데. 와아, 정말 맛있겠다!”등과 같이 말하며 좋아했다. 다들 여러 음식과 함께 잡채도 담아 갔다. 나도 골고루 음식을 담고 잡채는 조금만 담았다.


삼삼오오 소파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즐겼다. 운동 전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지만 밥을 함께 먹으면서 대화를 하니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늘 그렇듯 한국 드라마, 한국 음식, 한국 여행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카페 창업 계획이 있어서 한국의 유명 카페를 벤치마킹하려고 한 달씩이나 한국에 다녀 친구도 있었다. 제주도 골프 여행, 올레길 트래킹, 설악산 등산, 속초 스키 여행 등 다양한 테마 여행을 즐긴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의 설날, 추석 등의 명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들 한국에 호의를 가지고 있어서 마치 내가 스타가 된 것처럼 여겨졌다.


친구들에게 이번 설 연휴에 뭘 했는지 물어보았다. 친정 모임, 시댁 모임에 참석하고 몇몇 친척을 찾아뵈었다고 했다. 연휴 동안 달달한 음식을 많이 먹어서 살이 쪘다며 뱃살을 보여 주며 웃었다. 다들 뱃살을 꼬집으며 한바탕 웃었다.


아몬드 젤리와 롱간이 들어간 화채, 과자류, 초콜릿, 귤 등


배는 불렀지만 디저트를 조금 가져오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나는 웃음이 터졌다. 한 명이 잡채 그릇을 옆으로 비스듬히 세워 들고 있고 또 다른 두 명이 포크로 잡채를 긁어 개인 접시에 담고 있었다. 테이블에 가 보니 당면 한 가락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만들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저트 테이블로 가서 작은 볼에 아몬드 젤리와 롱간이 들어간 과일 화채를 담았다. 과자와 귤도 담아 왔다.


조금 후 모임의 리더가 “자, 이제 모두 이 테이블로 오세요!”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날 설 모임의 하이라이트, ‘위셩(鱼生)'을 먹는 시간이었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설에 꼭 '위셩'이라 불리는 생선 샐러드를 먹는다. 생선을 뜻하는 ‘위(鱼)'가 ‘번영, 활력’ 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위셩에 사용되는 재료는 대략 10여 가지다. 얇게 썬 생선회, 얇게 채 썬 당근, 무, 오이, 감귤 껍질, 멜론, 포멜로, 다진 땅콩, 튀긴 만두피 그리고 다양한 양념과 소스 등이 포함된다.


위셩(생선 샐러드) 


모두들 테이블 주위로 빙 둘러 섰다. 쟁반처럼 크고 둥근 접시에 샐러드 재료를 하나씩 었다. 아주 특이한 것은 재료를 하나씩 넣을 때마다 축복의 말을 했다. 예를 들면 생선회를 넣으며 “니엔니엔요위! (매년 풍요롭기를!), 포멜로를 넣으며 “따지따리! (행운과 번영을!)”, 채를 친 무를 넣으며 “부부까오셩! (사업 번창과 직장 승진을!), 자두 소스를 뿌리며 "티엔티엔 미미! (삶이 달콤하고 사랑으로 가득 차길!)"등과 같이 외쳤다.


재료를 다 넣은 후에 모임의 리더가 “자, 다들 젓가락을 들었죠? 꽁시파차이!(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외치자, 모두들 “완쓰루이!(뜻한 바 이루어지길!), 션티찌엔캉!(건강하길)!”등과 같은 여러 축복의 말을 하면서 젓가락으로 위셩을 높이 던지며 섞었다. 이렇게 위셩을 높이 던져 섞는 행위를 ‘로헤이’라 부르는데 높이 섞어 올릴수록 복이 더 많이 온다고 했다. 다들 신났다. 테이블 위도 난리가 났다. 로헤이 하느라 접시 밖으로 떨어진 위셩도 많았다. 7번 정도 높이 던져 섞은 후 조금씩 나눠 먹었다. 맛은 좀 오묘했다. 단맛이 너무 강했다. 맛있게 먹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두 접시를 먹었다.


로헤이 시작하기 직전


로헤이


오후 일정이 있어 나는 그쯤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단톡방에는 네가 와 줘서 더 특별한 모임이 되었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잡채가 정말 맛있었다며 만들어 와서 고맙다고 했다. 그날 찍은 사진과 동영상도 여러 장 올라와 있었다. 메시지를 읽고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이 흐뭇했다. 정말로 중국 문화 속에 흠뻑 빠져 재미있게 보낸 설 모임이었다. 로헤이의 생동감 있는 분위기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영어와 중국말이 혼재하는 공간에서 그들의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고 놀이를 했다. 그들의 관습과 표현 방식을 이해했다. 나를 반겨 준 친구들에게 고마웠다. 중국 문화를 나에게 소개해 준 것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와 음식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감해 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서로의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국계 싱가포르인들, 설맞이 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