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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Sep 11. 2024

그림과 함께하는 나의 일상

화실에서 그려낸 일상의 행복


미술은 나에게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마음속에만 간직한 취미였다. 아이들을 돌보며 내 일에도 집중해야 했고, 나를 위해 돈을 쓸 여유도 없었다. 치열한 하루가 일상이었다. 그런 내 마음에 불을 지핀 건 브런치 글을 읽으면서부터였다. 브런치에서 그림 전시회에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뛰었고,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에 관한 글을 읽을 때면 그들의 세계를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도 느꼈다.


그렇게 상상만 하던 미술을 마침내 시작하게 된 것은 1년 전이었다. 아이들도 다 자랐고, 나에게도 여유 시간이 생겼다. 그동안 꿈꿔왔던 일을 이제는 실천에 옮길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조금 멀지만 공원 안에 있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화실을 선택했다. 우선 한 번만 수업을 들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는데, 2시간 반 수업 후 바로 정규 수업을 등록했다. 취미 생활을 위해 선뜻 레슨비를 내는 게 망설여졌지만,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주는 작은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화실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갔다. 여행을 가거나 개인적인 일로 바쁠 때는 몇 주 못 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요일과 시간을 정해 그날에 맞춰 갔다. 몇 분의 화가 선생님 중 원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었고, 여러 수업을 경험한 후 내가 선호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꾸준히 듣기 시작했다.


첫 두 작품은 아크릴화였다. 인상주의 유명 화가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했고, 풍경 사진을 참고하여 인생 첫 풍경화를 완성하기도 했다. 세 번째 그림은 유화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평소 유화의 두께감과 깊이감을 좋아했기에 어려울 것 같았지만,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아크릴화 2점을 그렸으니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 주셨다.


(왼쪽) 첫 번째 아크릴화: 존 싱어 사전트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오른쪽) 두 번째 아크릴화: 핀터레스트에서 찾은 풍경 사진을 보고 그렸다.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  예쁜 티 테이블 사진을 찾았다. 처음 그 사진을 본 순간 클래식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에 한눈에 빠져들었다. 중앙에 놓인 러블리한 장미꽃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초보인 내가 그리기에는 좀 어려워 보였지만, 작품을 완성한 후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캔버스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바로 물감으로 그리는 게 망설여졌지만, 일단 첫 선을 긋고 시작하니 금세 두려움이 사라졌다. 대략 구도를 잡고 형태를 그린 후, 한 가지 색상의 물감만 사용해 밝고 어두운 부분을 나타내는 모노크롬 기법으로 색을 칠했다. 전체적인 느낌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유화 물감으로 채색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채색하기 전에, 모노크롬 기법으로 명암을 나타냈다. 이 작업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진행했다.


마카롱을 그리고, 장미꽃 사이사이에 있는 초록색 잎사귀를 그렸다. 그다음 장미꽃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꽃잎 하나하나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았지만 적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선생님은 장미꽃의 특징을 잘 살피는 게 중요하다며, 짙은 꽃잎부터 그리라고 조언해 주셨다.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며 각 송이마다 특징을 파악한 뒤 채색을 시작했다.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아 여러 번 덧칠을 해야 했고, 색은 비슷했지만 물감이 얇게 칠해져 다시 덧칠을 해야 했다. 이 작업을 무한히 반복했다. 그렇게 꽃 한 송이 한 송이와 대화하듯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이 부분은 그림을 그리며 가장 오랫동안 집중했던 부분이었다. 차 주전자와 찻잔에 그려진 장미꽃무늬도 표현하기 어려워 보였지만, 꽃병 속 장미꽃들을 그리고 나니 비교적 수월하게 느껴졌다.


장미꽃을 그리기 시작한 초기에는, 장미꽃의 표정을 살리는 것도, 꽃잎을 그리는 것도 어려웠다.


장미꽃을 대부분 완성한 후, 나머지 부분을 채색하기 시작했다.


배경, 테이블, 주전자 등 세부 사항에 집중하여 그리기 시작했다.


나의 첫 유화 작품이다. 이 그림에는 나의 행복과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테이블, 창문, 배경 등을 차근차근 그리다 보니 어느새 그림이 완성되었다. 사실 이 그림을 완성하는 데 거의 6개월이 걸렸다. 수업을 빠진 주도 있었고, 유화라 물감을 말려가며 수정하다 보니 진도가 느리게 나갔다. 그 과정이 참 좋았다. 몇 달간 한 그림에 매달렸어도 한 번도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캔버스 앞에 앉아 있는 순간이 행복했고, 그림이 사랑스러웠으며, 그 시간이 주어졌음에 감사했다.


화실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내 그림을 보고 “정말 예쁘다. 그림이 평온하다.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해주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내 그림에 담긴 행복과 기쁨을 알아봐 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화실에서 만난 친구들은 서로의 그림을 보며 배우고, 따뜻한 시선으로 평을 해주었다. 그림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이제 그림은 운동과 글쓰기와 더불어 나에게 생활의 활력을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나의 일상에 빠질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명품 가방이나 명품 의류 같은 물질적인 것보다 영혼의 즐거움과 정신적인 만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인격적인 성장이 더없이 귀하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내 인생 끝까지 함께할 좋은 친구를 얻은 것 같아 고맙고, 자연 속에서 힐링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다. 싱가포르에서 나의 일상은 이렇게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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