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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Mar 05. 2022

소중한 친구, 앤젤라

16년 지기 싱가포르 친구와 생일 점심을 먹다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서로의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것도 낯선 나라에 와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결 같이 나를 챙겨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일이다. 해외살이는 마른땅에 온몸으로 부딪혀 뿌리를 내리는 것과 같다.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며 오롯이 내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익히는 즐거움도 있지만 잘 몰라서 헤매거나 실수를 하면서 답답함도 느낀다. 낯선 길을 걸어가는 동안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헤매는 나에게 친구가 되어준다면 목마른 가슴에 한 모금의 물을 마시는 것과도 같다. 나에게 앤젤라는 그렇게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듯  주었다.


지난 일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늘 그래 왔듯이 앤젤라는 우리 집에 들러 작은 선물을 전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줬다. “앤젤라, 생일 축하해. 항상 건강하고 오늘 멋진 하루를 보내. 내 소중한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마워.” 나는 세례명인 앤젤라를 영어 이름으로 쓰고 있어서 친구 앤젤라와 이름이 같다. 나이도 같고 생일도 한 달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해 생일이 평일이고 서로 시간이 여유로우면 생일에 같이 점심을 먹지만 주말이거나 바쁠 때에는 생일에 잠시 만나 이렇게 축하를 해 주고 식사는 다음으로 미룬다. 어제는 앤젤라와 미뤄 둔 생일 점심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식당에 예약해서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과 함께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애피타이저로 오징어 튀김과 프로슈토 햄을 얹은 멜론을 먹었다


앤젤라를 처음 소개받은 건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한국 아이 생일잔치에서였다. 쌍꺼풀이 진 큰 눈에 뽀얀 피부가 빛났다. 블링블링한 액세서리를 하고 분홍색 나풀거리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한때 싱가포르 항공 스튜어디스로 일했다는 앤젤라는 친절하고 사교적이었으며 얼굴에 항상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처음 보는데도 앤젤라와 나는 금세 친구가 되었고 짧은 만남에도 왠지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이들의 유치원이 집에서 꽤 먼 곳에 있었던 터라 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우연히도 우리는 같은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앤젤라가 아이들 수영 레슨을 같이 시키자고 연락이 왔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수영 레슨을 고 있었고 선생님을 갑자기 바꾸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룹 레슨을 게 되면 돈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룹으로 레슨을 받으니 한 명에 10불(당시 6천 원)만 내면 되어서 슨비도 많이 절약되었고 아이들은 수영 영법과 함께 꼭 필요한 생존수영도 배웠다. 4년 동안 같이 수영을 배운 아이들은 모두 생존수영 골드 단계 시험까지 합격하고 자격증을 받았다.       


메인으로는 파스타와 해산물 피자를 먹었다


앤젤라는 많은 부분에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집을 살 때도 부동산 소개업자로 일하고 있던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그 친구 덕분에 괜찮은 집이 나오자마자 다른 사람이 보기 전에 먼저 둘러볼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월세로 살고 있던 집은 4층이었는데 집주인이 시세보다 싸게 팔 수 있으니 구매 의사가 있다면 살던 집을 사라고 제안했다. 월세로 살던 집도 상태가 좋았고 이사비도 절약할 수 있으니 찮을 것도 같았다. 앤젤라의 친구 싱가포르 사람들은 숫자 4를 싫어하는데 아마도 그 이유로 집을 더 싸게 내놓았을 거라고 했다.  8층에 전망 좋은 밝은 집이 나왔고 나는 그 집이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번영을 뜻하는 숫자 8을 너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폭도 4층 집과는 차이가 날 것이고 나중에 집을 팔 때에도 8층 집은 쉽게 팔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결국 돈을 조금 더 주고 내 마음에 드는 8층 집을 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앤젤라 덕분에 레슨비가 저렴하고 잘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이나 학원을 많이 소개받았고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 살림에 보탬이 되는 소소한 꿀팁도 자주자주 알려주었다. 나는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앤젤라에게 물었고 늘 흔쾌히 도와주었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케이크를 먹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앤젤라와 나는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다시 공부를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앤젤라는 재무 설계사가 되어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고 나는 한국어 강사가 되어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서로 바쁜 탓에 자주 만나서 밥을 먹지는 못 하지만 지나가다가 맛난 게 보일 때 서로를 떠올리게 된다. “이거 너 생각나서 샀어.” 잠깐 들러 건네주고 가는 쇼핑백 안에는 케이크나 빵 같은 간식거리와 함께 앤젤라의 마음이 들어있다. 길을 건널 때면 앤젤라는 항상 내 손을 잡는다. 아이들 손을 잡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고 하면서 친구인 내 손도 꼭 잡고 길을 건넌다. 처음 앤젤라가 내 손을 잡고 길을 건넜을 때 예기치 못한 앤젤라의 행동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앤젤라가 잡은 손이 길을 건널 때면 늘 내 손을 잡고 건너던 엄마 손 같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같이 하는 여유로운 점심에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앤젤라네 둘째 아들이 여자 친구에게 흠뻑 빠져 있는 이야기, 얼마 전에 학원을 차린 이야기, 코로나에 걸려서 고생한 이야기, 첫째 아들의 취직 준비에 막내아들의 대입 걱정까지 사소한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눴다. 곁에서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온 나는 앤젤라의 세 아들 이야기에 같이 웃고 같이 흐뭇해했다. 그렇게 함께 한 식사는 앤젤라의 기도로 끝이 났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앤젤라는 우리 모두 건강하기를 서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오랫동안 빛날 우정을 나누기를 나를 위해 또 우리를 위해 기도했다. 앤젤라기도 속에서 나는 나태주 시인의 시 〈서로가 꽃〉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는 서로가 꽃이고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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