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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Mar 16. 2022

함께 했던 시간은 달콤했어

이제는 안녕


“탁”     


“끄륵끄륵끄륵 캬캬캬 캭”     


“꺼억”     


“햐”          


스파클링 애플 주스 한 캔을 딴다. 톡 쏘는 맛이 좋아 쉬지 않고 몇 모금을 들이켜다 보면 어느새 목구멍 가득 탄산가스 차 더 이상 마실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멈추게 된다. 탄산가스와 함께 시원한 트림이 나온다.      


“캬, 이 맛이지.” 청량하고 상쾌한 맛, 입안에 남는 사과 맛이 향기롭다.       


금박 포장지에 싸여 있는 작은 바위 모양의 초콜릿 몇 개를 꺼낸다. 고소한 헤이즐넛이 바삭한 웨하스와 함께 씹힌다. 초콜릿을 싸고 있는 블링블링한 금색 포장지를 보니 마음도 금빛으로 물든다. 과자 한 봉지를 뜯는다. 네모난 모양에 굵은 설탕이 다닥다닥 박혀 있는 설탕 과자. 한 봉지 안에 세 조각이 들어있다. 한 조각만 먹어야지 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세 조각이 사라진다.      

                                                                                                                                           

학기말이 되어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던 2은 단 음식과 한 몸이 되어 지냈다. 평소 과자나 초콜릿과 같은 단 음식은 먹지 않는 편이 어쩌다가 과자가 생각나면 플레인 크래커에 크림치즈를 발라 먹다. 그런 내가 보름이 넘도록 단 음식에 빠져 방 안 가득 달달한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매일 계획한 일을 모두 마치고 나면 밤늦은 시간이 되었고 힘든 하루를 보낸 나는 무엇으로라도 보상받고 싶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책상 위에는 평소 먹지 않던 간식거리가 쌓이기 시작했다. 치즈 크래커, 블루베리 잼 쿠키, 양파 맛 칩. 쌀과자, 포도맛 젤리, 사과맛 캐러멜, 땅콩 박힌 초콜릿.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어디에서 이 모든 것들이 나왔는지 책상 한쪽엔 과자 봉지와 구겨 놓은 초콜릿 포장지가 매일 밤 굴러다녔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온라인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일을 하다 보니 장을 보러 갈 여유가 생기지 않았고 일 다 끝낸 밤에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했다. 고기와 야채, 우유 등을 장바구니에 넣고 나면 어디에선가 허기진 나를 위한 맞춤 추천 품목들이 나왔다.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달달한 음식이라고 유혹하듯 과자와 초콜릿을 추천해 주었다. 뇌에서 단 것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받은 나는 홀린 듯이 클릭을 했다. 탄산음료까지는 주문할 생각이 없었지만 스파클링 애플 주스를 보는 순간 더 이상 자제할 수가 없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이거 한 박스 주문해야겠다.’ 며칠 후 식재료와 함께 배달된 스파클링 애플 주스 한 박스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날 밤 일을 마친 후 시원한 스파클링 애플 주스 한 캔을 꺼내 크게 한 모금을 마셨다. 바로 그 맛이었다. 피곤함을 달래주는 그 맛. "탁" 소리와 함께 나오는 향기로운 후지 사과 맛. 힘들었던 하루를 보상받는 그런 맛이었다.


기분 좋은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아침이 되면 구겨진 초콜릿 포장지와 같이 내 마음도 구겨져 후회가 밀려왔다. 책상 위에 쌓인  과자 봉지, 찌그러진 금박 초콜릿 포장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텅 빈 . 다 먹은 아이스크림 컵, 진정한 야식의 기쁨을 준 햄버거가 남긴 포장지. '미쳤어, 미쳤어, 이렇게 먹으면 너 정말 큰일 난다. 오늘 밤에는 절대 먹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했건만 그다음 날 아침에도 또 그다음 날 아침에도 책상 위의 풍경은 다를 바 없었다. 보름을 그렇게 내 몸 단짠으로 가득 채렸다. 단 음식은 뇌에서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분비하고 세로토닌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힘들고 피곤한 하루를 보낸 내 몸은 단 음식을 통해 적절한 보상을 받 싶었던 것 같다. 


학기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단 음식에 대한 욕구는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늘 그러했듯 간식이 먹고 싶으면 그릭 요거트에 과일 몇 조각을 넣어 먹거나 체다 치즈나 삶은 달걀을 먹는다. 온갖 과자 봉지로 지저분던 책상 위에는 물컵만 단정히 올려져 있을 뿐이다. 책상이 깔끔해지고 간식의 흔적이 없어진 건 좋은 일이다. 단 음식을 찾지 않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 어느 날이 오면 잠깐 누렸던 단 음식의 향연도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걸.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더 이상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을 날도 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슈퍼마켓 초콜릿 코너에 서서 폭풍처럼 일했던 그때의 모습을 추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다음 학기에는 건강한 간식으로 준비해 봐야겠다. 천연 탄산수에 사과를 갈아 넣으면 스파클링 애플 주스 맛과 비슷할까. 과자가 당긴다면 플레인 크래커에 남편이 만들어 놓은 딸기잼을 얹어 먹어야겠다. 그럼 초콜릿은 어떡하지. 다크 초콜릿은 엄청 써서 먹기 싫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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