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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Apr 24. 2022

마음에 비가 내렸다

홀로 삼키는 눈물

 

2022년 4월 20일 수요일 오전 11시     


세상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택시 안에서 목을 꺾어 돌려 미술 선생님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웃으며 연신 손을 흔들었다. 택시를 타길 잘했다. 운전을 하고 갔다면 선생님의 뒷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내 뒷모습을 선생님에게 남겼을 것이다. 분명 운전대를 잡은 내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 앞이 뿌옇게 보였을 것이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연신 닦아내야 했을 것이다. 택시 안에는 신나는 팝송이 흘러나왔다. 기사 아저씨는 리듬에 맞춰 핸들에다가 손가락 장단을 맞췄다. 나는 딸아이가 완성하지 못하고 미술 선생님 댁에 두고 온 유화 두 점을 꼭 잡고 있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2월 말에 한 학기 수업을 끝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미술 선생님을 만났을 것이다. 같이 만나서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쌓아 둔 이야기도 한 보따리 풀어내며 웃음꽃을 피웠을 것이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의 레슨 시간이 다 되어 아쉽게 헤어졌을 것이다. 늘 반복될 것 같던 그 시간이 올해는 사라졌다. 미술 선생님과 점심 약속을 하려고 학기말 성적처리가 끝날 무렵 메시지를 드렸는데 12월에 한국에 다니러 가신 선생님갑작스레 수술을 받으셨고 회복 중이라고 하셨다. 예상하지 못한 답장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못 뵌 지가 오래되어 보고픈 마음이 가득했다. 싱가포르의 일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가실 거라는 메시지를 읽는 순간 눈물이 났다. 서로 바쁜 탓에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도 나는 누구보다 선생님을 좋아하고 의지하며 살았다. 가슴 한편이 훅하고 내려앉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헤어질 줄 몰랐다.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떠나고 내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선생님은 오래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그런 엄마 같은 분이셨고 항상 나를 품어주고 아껴주셨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이제 이곳에는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공허해졌다.      


콜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는 잠깐 동안 선생님과 어떤 이야기도 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가면 선생님이 계시는 광화문에서 만나자는 말 밖에. 근처에 있는 갤러리에 가서 그림도 보고 차도 마시자는 그런 말 밖에. 선생님은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손끝을 내어주다가 얼른 빼어버렸다. 혹시라도 내가 선생님의 따뜻한 체온을 느껴버릴까 봐. 혹시라도 울고 있는 내 마음이 맞잡은 손으로 전해질까 봐. 마음에 비가 내렸지만 끝끝내 참았다.

           

2022년 4월 20일 수요일 밤 9시     


미술 선생님을 만나고 온 그날 밤 16년 지기 싱가포르 친구 앤젤라를 만났다. 밤바람이 시원해서 아파트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테니스장을 환히 밝힌 불빛을 조명 삼아 로비 한쪽에 앉았다. 이미 앤젤라의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혔다. 늘 밝게 웃던 앤젤라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만히 앤젤라의 손을 잡고 안아줬다. 내일 수술 잘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울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했다. 네가 수술하는 동안 하루 종일 나는 너를 생각하며 기도할 거라고 했다. 앞으로 갈 길이 힘들겠지만 잘 이겨나갈 것만 생각하자고 했다. 나는 해 줄 게 없어서 그냥 안아주고 또 안아줬다.      


지난 3월 앤젤라와 생일 점심을 먹은 날 우연히 유방암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작년에 수술받은 혹이 암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앤젤라는 지난 1월에 유방암 정기 검진을 하고서는 깜빡 잊어버리고 결과를 보러 가지 않은 게 생각났다며 내일이라도 가서 확인해야겠다고 했다. 다음 날 저녁 앤젤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상의학과에서 가능한 한 빨리 유방외과 전문의를 만나라는 검사 결과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유방 X선 촬영에서 1.2cm 침상형 종괴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걱정된다는 앤젤라에게 나도 암으로 강력히 의심되는 혹이라고 들었지만 조직 검사에서 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으니 너도 그럴 거라고 하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침상형 종괴이면 왠지 암일 확률이 높을 것 같아서 마음이 심란했다. 결국 앤젤라는 총조직 검사에서 유방암으로 판명이 났고 MRI 검사를 해 보니 양쪽 유방에 종괴가 있었다. 암 덩어리가 5cm나 되었고 문어발처럼 뻗어 있다고 했다. 양쪽 유방을 전체 절제하고 복부 지방으로 재건 수술을 동시에 받아야 한다고 했다. 10시간이나 되는 긴 수술을 해야 하고 수술 후에도 항암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앤젤라는 불안한 마음에 매일 같이 잠을 설치고 많이 울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새벽에 잠 못 이루고 내게 보낸 앤젤라의 문자가 쌓여 있었다. 나는 다 잘 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해 줄 게 없었다. 다음 날 수술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까. 간단한 수술도 아니고 대수술을 해야 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심란할까. 앞으로 겪어야 할 시간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힘들까.      


앤젤라와 헤어지고 아파트를 걸었다. 한 바퀴만 돌고 집으로 들어가야지 했는데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아침에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선생님과 아쉬운 인사를 하고 밤에는 대수술을 앞둔 앤젤라를 만났다. 하루 종일 내 마음은 비가 내렸다. 큰소리도 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울어댔다. 세상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선생님과 헤어졌고 세상 환한 얼굴로 앤젤라를 위로해줬다. 마음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지만 울지 않았다. 많이 힘든 하루였다. 바람이 눈을 스쳤다. 참고 있던 눈물은 결국 바람에게 내주고 말았다. 밤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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