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환희 Oct 23. 2015

가을의 호불호, 은행나무

오사카, 일본


나무는 보통 암, 수가 하나다. 어떤 나무는 한 나무에서 암꽃과 수꽃이 함께 핀다. 어떤 나무는 한 꽃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한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숫나무가 구분되어있다. 암나무에선 은행열매가 달린다. 열매는 구워먹으면 제맛이지만, 독이있다. 집에서 은행을 구우면 아버지는 꼭 열 개 미만으로 먹어야한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신다. 그러나 단 한번도 열 개 미만에서 손이 그친적은 없던 것 같다. 구운게 다 사라져야 은행시식은 끝난다. 많이 먹으면 독인지 알면서도 먹는게 은행만은 아니다... 또 나라는 인간은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쓰기에 뒤지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은행을 먹는 경향이 있다. 언제 한번 속이 뒤집어져 봐야 은행에 대한 혓바닥의 열망을 끊을 수 있으려나.


아, 먹는얘기를 하려고 했던건 아니었다. 은행 냄새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했다. 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엔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심어져있다. 신호를 기다리며 멀리서 은행나무를 보면 가을의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잎이 어울려 가을을 말했다. 신호가 떨어져 은행나무로 다가가니 진짜 가을이 다가왔다. 바로 은행냄새다. 길바닥엔 은행이 흩뿌려져, 운 나쁜놈은 터지고, 운 좋은놈은 갈라져 있었다. 내 자전거 바퀴에 그 운 좋은놈도 운 나쁜놈이 되곤 했다. 나는 숨을 참고 자전거를 몰아 은행'똥'냄새가 나는 구역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한국에서 가을에 역한 은행냄새를 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은행 냄새를 맡은 기억이 없다. 가만 생각해보니 길거리에 떨어진 은행 알도 거의 보지 못한 듯 했다. 내가 본 것은 그저 따뜻하고 포근한 샛노란 은행잎 뿐이었다. 나는 일본에서 그저 아름답게만 은행나무를 마주했다. 불쾌감 하나 없이.


암나무만이 가지고 있는 은행열매는 참 맛있고 좋지만, 가로수로 두면 길바닥에 떨어져 냄새가 난다. 암나무는 냄새가 나는 녀석이다. 아마 일본에서 가로수로 쓰이는 은행나무는 대개 숫나무일 것이다. 처음 조경을 할때 암, 수에 대한 구분을 철저히 해서 심었을 것이다. 샛노란 은행잎만을 즐기고 냄새는 멀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찾아보니 이제 한국에서도 가로수용 은행나무는 구분해서 심는 노력을 한다고 한다. 물론 이미 널린게 암나무이긴 하지만. 아마 한국도 한 십년이 지나면 냄새없이 포근한 가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은행의 입장에선 이 얼마나 개같은 일이냐. 짝을 찾고 싶은데 주변에 사내놈들만 있는거 아녀...이거 군대인가. 아...냄새나. 싫어...






영화 은행나무 침대(1996)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우린, 너무 오래 이 사랑을 기다렸다!


석판화가이자 대학 강사인 수현과 외과의사인 선영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의 일상은 안정돼 보이고 평범했지만 우연히 노천시장에서 은행나무 침대를 만나면서 혼란에 빠져든다. 그에게는 자신도 알지 못한 전생의 사랑이 존재한 것이다. 


 천년전, 가야금을 연주하는 궁중 악사 종문은 공주 미단과 사랑하는 사이지만 미단 공주는 이미 당대 최고의 무관인 황장군과 결혼하기로 되어있다. 종문과 미단의 관계를 눈치 챈 황장군은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단칼에 종문을 목을 베어버린다. 망연자실한 미단은 종문의 뒤를 따른다. 몇백년 뒤 종문과 미단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로 환생하는데... 종문은 도심 한가운데 가로수용 은행나무로 환생해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미단은 커녕 사내놈밖에 없었다. 그 분노에 종문은 "세상 참 개같이 징글징글하네"라고 울부짖었다. 그런 종문의 박력있는 모습을 본 근처의 한 숫나무가 종문에게 관심을 보이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낯선 사람에게 꽃 한송이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