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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Oct 24. 2015

사두(Sadhu) 혹은 바바(Baba), 힌두 수행자들

카트만두, 네팔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이 한때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진짜 정글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 내고 투어상품을 이용한다는 것. 사실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이다. 우리가 발을 디딜 수 있는 전 세계의 '오지'는 사실 대부분이 관광투어다. 원주민도 퇴근하면 옷을 갈아입고 TV를 본다. 원주민의 집에 함께 기거하는 투어상품도 많다. 무인도도 투어로 꾸려져 있다. 나도 다 해봤다. 무인도 '투어'를 해봤고, 원주민 '투어'를 해봤다. 마음만 먹으면 사진과 영상으로는 다 속일 수 있기에, 그리고 가장 쉽게 특별함을 맛볼 수 있기에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투어상품이 개발되고 있다.


그렇게 잘 알면서도 사두(Sadhu) 혹은 바바(Baba), 혹은 구루(Guru)라고 불리는 힌두 수행자들에 대해선 모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특별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인도, 네팔이니까, 분명 그들은 진짜 수행자이며, 온갖 쾌락과 욕망에서 멀어져 정신수양을 하고 있는 이들일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사두를 찍은 사진들을 보며 나는 이번 여행에서 꼭 이들을 만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듣고, 뚫어질 듯 어딘가를 주시하는 눈을 마주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 소망은 일단 보류한다. 여행의 둘째 날. 나는 네팔 최대의 힌두사원 파슈파티나트를 찾았다. 그리고 사두를 만났다.


처음 본 사두. 반가운 마음에 바로 사진을 찍었는데 돈을 요구한다. 돈이 없다고 유창한 바디랭기지로 얘기했더니 바로 수긍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 분은 진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두번째 본 사두. 이번에는 먼저 사진을 찍으라고 나를 부른다. 나는 거절하고 뒤로 갔다...!


메이크업 수정 중


이 사두는 내 앞에 가던 서양 관광객에게 다짜고짜 축복을 내리더니 그들에게 돈을 요구한다. 덕분에 나는 사진을 그냥 찍었다.


그리고 이 오른쪽 사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이 사진 역시 내 앞에 선 서양 관광객에게 눈길을 줄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이제껏 어떤 대상을 찍고 돈을 지불해 본 적이 없다. 사진에서는 돈이 오가는 관계가 아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길든 짧은 어떤 교감이 오가기를 원했다. 딱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타인은 속일 수 있지만, 내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 여행 중 만났던 원주민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자는 이들을 바로 지나친 건 이 때문이었다. 별다른 의미 없는 관광사진이 아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내가 파슈파티나트에서 본 사두는 전문 모델 같은 인상을 주었다. 특히 저 오른쪽, 머리에 꽃을 단 사두는 특히 그랬다. 그는 관광객을 계속 쫓았다. 어디에서 사진이 가장 잘 나올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사원 주변에 서면, 저 멀리서 달려와 사원의 창틀에 포즈를 취하고 나를 불렀다. 슬쩍 물어보니 100루피. 조금 있다 50루피로 떨어졌다. 사실 이미지는 내가 딱 원하는 모습이었다. 그 스스로 가장 괜찮은 구도와 장소를 선택했기에 별다른 고민을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뭔가 마음에 걸렸다. 잠시 고민을 해보자며, 거절을 하고 다른 곳을 구경했다.


그렇게 다른 곳을 걷다 내려와서 이들을 다시 만났다. 내 뒤로 서양 여행자가 있길래, 잠시 발길을 멈춰보았다. 이들에게는 어떻게 하는지 구경해보고 싶었다. 여행자들은 사두에게 관심을 보였다. 커플이었던 그들은 사두 속에 섞여 셀카를 찍고 각자 사진을 찍고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그 광경을 보고 멀리 창틀에서 포즈를 잡고 있던 저 해바라기 꽃 사두가 바닥깔개를 들고 이들에게 달려왔다. 능숙하게 옆에 자리를 피고 자연스래 사진을 찍었다. 여행자는 100루피씩 돈을 주었다.


나는 천천히 그 광경을 바라봤다. 기존에 상상했던 사두의 이미지. 그러니까 모든 것에 초탈한 일종의 도인이라는 이미지는 완전히 다 날아갔다. 돈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서 욕망에 대한 초탈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잠시 기다리다 보니 내 앞으로 큰 카메라를 든 두 명의 중국인이 사두 옆을 지나갔다. 이들은 사두 무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자 저 해바라기 꽃 사두는 그 낌새를 알아채고 바로 옆 사원으로 달려가 나에게 행했던 대로 먼저 포즈를 취하고 중국인 관광객에게 손짓을 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이번에는 사진을 찍고 싶은지 그곳으로 향했다. 아... 이미지는 또 완벽하다.


나는 사두 사진이 특별한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교감이 있었던 사진이 아닐까 착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이러했다. 사두 사진은 돈을 주면 아무나 찍을 수 있는 초상화다. 그 안에 교감은 없고 모델료만 있다.


나는 또 한번 이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을 나와 카트만두의 도심으로 걸었다. 그러나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사두 생각이 났다. 눈앞에서 가장 완벽한 구도와 포즈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이미지가 거기에 있는데... 하면서 말이다. 걷는 길은 꽤나 길어서 아쉬움의 길이도 꽤나 길었다. 그냥 나를 속이고 완벽한 사진 한 장 찍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 앞에서, 나를 주시하는, 얼굴만 클로즈업 한 사진 한 장. 사원 창틀의 음각 한 가운데 놓인 사두 사진 한 장.


계속 그 사진이 아른거렸다. 기껏해야 모델료 500원인데.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인가 하고 후회도 됐다. 사진을 찍지 않은 이유가 돈 때문이 아닌데, 돈이 걸려있으니 돈 때문이라고 착각을 한게다.


호스트 사우갓의 집으로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 이야기를 했다. 사우갓은 내게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단 다가오는 2월 17일에 파슈파티나트에서 사두 축제가 열린다는 것. 그러니까 네팔, 인도 각지에서 사두들이 몰려온다는 얘기다. 그리고 사두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박시시라고 하는 일종의 시주로서 삶을 영위한다. 그러한 행위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다만, 돈을 먼저 나서서 요구하는 이들이 있고, 어쩌다 찍히면 넌지시 "박시시를 해보지 않으련?"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차이다. 그 돈으로 밥을 먹고 마리화나를 피고 고행을 한다. 어쩌면 음식을 시주하는 이가 줄어든 현 세태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그들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야 하니까.


이야기를 듣다가 힌두 구루로 유명한 3명의 인물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힌두의 정신적 가르침을 기반(?) 호화스러운 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던 기사가 생각났다.  그중 한 명은 조단위의 자산을 가졌다고 한다. 거대한 정원에 온갖 수입차를 가지고 있으면서, 정신 수양에 대한 가르침을 한다고 한다.(서양에는 동양, 특히 인도 문화에 대한 환상이 크다. 인도 = 영적 성장을 의미하며, 다양한 수양 방법을 위한 클래스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유명한 구루들은 대단히 인기가 높다)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으려면. 나는 사두에게 모델료를 주어야 한다. 눈 앞에서 나를 응시해야 하기에 몰래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마에 티카를 찍으려 해도 돈을 내야 한다. 그냥 찍어주는 사두는 없다. 안료는 땅 파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먼저 나에게 사진을 찍자고 청하는 생계형 사두는 그냥 스쳐지나가리라. 이리저리 관광객의 동선을 살피는 가짜도 그냥 스쳐지나가리라. 얼굴에 묻은 화려함에 혹하지 말고 눈빛에 혹하는 사두를 만나리라. 모델료가 아닌 박시시가 될 수 있는 느낌을 가진 사두를 찍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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