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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Feb 02. 2016

초록을 머금은 대평리 마늘밭

대평리, 제주

겨울, 대평리엔 유독 초록을 머금은 마늘밭이 널려있었다. 박수기정을 마주하는 넓은 뜰에도,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낸 바람을 마주하는 공간에도, 집과 집, 돌담과 돌담 사이의 자투리땅에도 마늘밭은 있었다. 육지의 겨울에선 초록이 귀하지만, 제주의 겨울은 널린 게 초록이다. 시래기가 될 운명을 타고난 무밭과 단단한 맛을 자랑하는 배추밭, 깍두기로 담가먹으면 색다른 재미가 있는 콜라비 밭 등등... 나는 제주의 겨울을 걸으며 온갖 초록을 마주하였는데, 걔 중 가장 빛나는 초록을 가진 건 단연코 마늘밭이었다. 


마늘을 감싸 안은 돌담


멀리 박수기정이 보인다


돌담은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나 같은 여행자의 접근도 막는다


밤의 골목을 돌았을 때, 나는 이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봇대에서 퍼진 불빛이 어둠 속에서도 마늘밭을 초록으로 빛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밤에 초록을 보는 즐거움을 그리 자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대평리에서 머문 둘째 날, 아는 동이 트기도 전에 첫날에 봤던 박수기정에 올랐다. 대평리로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함이었지만, 운이 좋지 않아 잔뜩 낀 구름만 볼 수 있었다. 붉은 기운을 보러 갔다가 이번에도 역시 대평리의 저 숱한 초록의 마늘밭만을 본 것이다.


대평리,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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