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환희 Feb 08. 2016

낙원동 국밥 골목, 그리고 우리집

낙원동, 종로


수도 서울은 '상경'의 대상이다. 지금은 조금 희미해졌지만, 산업화 시대만 해도 "서울 좋다더라", "서울에 가면 일자리가 있다더라"하며 청운의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이들이 많았다. 성공하지 않으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이들에게 서울은 기회의 땅이기도, 좌절의 땅이기도 했다. 그 뱉어낸 말 때문에, 경제적 여건 때문에, 그리고 바쁜 일 때문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도 고향에 가지 못한 이들을 달랬던 것은 아마도 저 따뜻하고 저렴한 국밥 한 그릇이었을 것이다. 그 국밥 한 그릇에 고향을 담아내고자 이 골목의 상호들은 죄다 지역을 담고 있다. 충청도집, 전주집, 광주집, 강원도집... 그리고 그 끝엔 무엇이 있는 줄 아는가?




바로 '우리집'이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집이 최고다.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할 것 없이 우리 집으로 초대한다는 얘기다.

참고로 우리집이 이 골목에서 제일 큰 국밥집이다. 게다가 코너에 있기도 하다. 내가 이 동네에 살 때는 그 인기에 힘입어 우리집만 가격을 천원 인상하여 말아 국밥을 오천 원 받기도 했는데... 우리집이고 나발이고 싼 게 최고라 사람들이 이곳을 찾지 않더라. 며칠 지나니 다시 사천 원이 되었다. 

참고로 내 취향은 강원도집이었다.



#
종로구 낙원동은 서울의 과거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곳 중 하나이다. 특히 탑골공원과 낙원상가, 삼일대로 사이에 껴있는 좁은 지역은 순대국밥 사천 원, 우거지 국밥은 이천 원이면 맛볼 수 있고, 이발은 삼천오백 원!(염색은 오천 원)에 할 수 있는 특별하게 저렴한 곳이다. 이 특별함은 지대에서 비롯된다. 서울의 중심이자 종로 3가역이 바로 앞에 지나고 있음에도 바로 옆 인사동과 비교하여 지대 차이가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여덟 배에 이른다. 분위기도 많이 다르다. 인사동은 밝고 유동인구의 상당수가 젊은이들이지만, 낙원동은 조금 어둡고(건물 자체가 낡았다) 유동인구의 대부분은 노인들이다. 물론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이 되면 종로 3가 5번 출구를 기점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지만, 동네의 주인공이 노인들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노인의 메카 탑골공원도 옆에 있고)

낙원동이 언제까지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할지는 모른다. 주변은 포위망을 좁히듯 점점 낙원동을 압박하고 있다. 낙원동 옆 한옥으로  유명한 익선동은 이미 많은 게스트하우스와 카페가 들어섰고, 지금도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다. 가로수길, 경리단길에 이어 이곳이 뜰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익선동은 분명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익선동만의 특별한 매력을 가진 동네라 분명 뜨긴 뜰 것이다. 익선동이 그렇게 뜨면 낙원동의 이천 원짜리 우거지 국밥, 사천 원짜리 순대국밥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많은 단골 노인들이 이곳을 찾아 회전율로 승부한다고 한들, 임대료가 크게 오르면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낙원동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익선동도 아직이다. 그러나 분명 언젠가는 그럴 것이다. 과거 이곳이 번화했다 사그라든 것 처럼. 공간은 돌고 도니까. 특히 종로와 같은 서울의 꿀딴지 같은 공간이라면 더더욱. 갑자기 야인시대가 생각난다. 김두한, 구마적, 쌍칼...종로를 접수하려던 사람들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Round one. Figh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