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시대의 정겨움, 관용과 이해의 너그러움이 그리운 오늘
어린이날을 보내면서 수십 년 전 나의 어릴 때가 떠올랐다.
'사건 당일'은 5월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붐벼야 할 어린이대공원이 인적 없이 한적했는데 내가 학교를 안 갔으니 추정컨대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 개교기념일 아니었나 생각된다. 12월 1일이 개교 기념일이었는데,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인 데다 평일이었으니 어린이대공원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6학년이었던 나는 동네 동생들을 데리고 광진구 능동에 있는 어린이회관에 갔다. 지하철이 없던 시절이니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 지역에서 꽤 오랜 시간 버스를 갈아타며 갔을 것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 어린이회관에 갔는데 사실 '견학 장소' 같은 그 공간에 아이들이 얼마나 오래 있을 수 있겠는가. 분명히 1~2시간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보내고 나왔을 것이다.
어린이회관을 나오니 뭔가 꽉 찬 만족감이 없이 심심하던 터에 바로 옆에 더 멋지고 신나는 공간이 보였다. 동물원과 놀이기구 등이 있는 어린이대공원이다. 인터넷이 없던 때니 어린이회관 옆에 어린이대공원이 붙어있는지,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 사전에 정보를 몰랐을 것 같다.
재미는 있지만 신나지는 않았고 어딘가 2% 부족했던 어린이회관과 달리 눈앞에 ‘제대로 놀아볼 수 있는' 신나고 멋진 신세계가 보이는 것으로 느껴졌을 터다. '서울 촌놈'들이었던 우리는 당연히 어린이대공원도 구경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은 분명 이상한 날이었다. 사람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어린이회관에서 어린이대공원으로 연결하는 출입구 문이 닫혀 있었다. 매표소도 문이 닫혀 있었다.
동네 동생들을 거느리고 있던 내가 어떤 결정을 했을까.
동생들을 데리고 그 먼 곳까지 힘들게 갔는데 그냥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철제 담장을 넘자고 했고, 주저하던 동생들이 '형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우리 키의 3배 정도 높은 철제 담장을 내가 먼저 넘었다. 차례로 한 명씩 무사히 담장을 넘었는데, 문제는 체구가 크고 뚱뚱했던 5학년 녀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몸무게가 세 자리 숫자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녀석이 주저주저하다 마지막으로 담장을 기어올랐는데 철제 담장이 철커덩 철커덩하면서 출렁거렸다.
겨우겨우 담장 꼭대기에 올라간 그 녀석이 이쪽으로 넘어와야 하는데 무서워서 못 넘겠다고 했다. 철제 담장은 계속 철커덩 철커덩 소리를 내고 있는데 꼭대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녀석을 향해 나는 물론 다른 동생들도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야~ 빨리 내려와... 우리 다 붙잡혀!"
그렇게 몇 분을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녀석은 내려오지 못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경비 아저씨가 우리를 발견하고 오셨다. 그 녀석은 경비 아저씨 도움으로 다시 내려왔고, 경비 아저씨가 열어준 출입문을 통해 우리와 재회했다.
하지만, 기쁨의 재회라기보다는 ‘공범들이 모두 붙잡히는’ 상황이었다.
경비 아저씨가 우리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너희 어디 학교 아이들이냐?”
조무래기 공범들의 ‘주범’ 격인 내가 답을 해야 했다.
“시… 시… 신동 국민학교요.”
경비 아저씨가 말했다.
“신동 국민학교? 학교에 똑똑한 신동들만 다니나? 좋은 학교 다니는데 왜 이런 짓을 했어?”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상황 설명을 했고, 경비 아저씨는 우리를 크게 꾸짖거나 문제 삼지 않고 공원으로 들여보내셨다.
사실 나는 신동 국민학교가 아닌 신도 국민학교에 다녔다. 학교 이름을 그대로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요즘 같이 휴대폰으로 언제든지 실시간 검색을 할 수 있는 시대였다면 금세 진위가 밝혀졌을 것이고, 팩트 체크를 위해 학교 측에 전화가 갔을 수도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유연함과 정겨움, 관용과 이해의 너그러움이 그리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