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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todo Jun 22. 2022

진짜보다 더 진짜가 된 가짜 가족의 진짜 가족 흉내내기

영화 '브로커', 진짜 가족을 되돌아보게 하는 가짜 가족 이야기

생명의 본능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생명을 공통 분모로 맺어진 공동체가 가족이라서일까, 가족도 때로는 지독히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동시에 배타적이다. 가족의 구성 토대인 혈연이 다른 어떤 인연보다도 배타적인 탓이다.


핏줄로 엮인 관계는 서로에게 불가분적이다. 원심력보다 구심력이 강하다. 그래서 가족은 지향하는 가치가 옳지 않거나 구성원끼리의 관계가 비틀릴 경우 더욱 치명적이다. 헤어지고 흩어지면 그만인 여느 공동체와 달리 혈연 공동체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 깨어날 수 없는 악몽처럼 질기고도 질긴 악연이 되기도 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완전히 남남인 이들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영화 '브로커'가 말하려는 가족은 어떤 가족일까.


가족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이지만, 가장 원초적인 사랑 공동체로서 더 크고 높은 차원의 보편적 사랑으로 나아가는 요람이다. 사람이 태어나 인간으로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훈련장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존재가 모와 순을 배태하고 양면성을 품고 있듯이 가족 역시 희망과 절망을 함께 품어 모순적이며 양면적이다.


영화 ‘브로커'는 가족을 그린 영화다. 혈연이 얽힌 가족은 아니다. 갓 태어난 피붙이 아기를 버렸다가 다시 팔려는 엄마, 아기 거래를 알선하고 중개하는 두 남자, 가족의 사랑을 갈구하며 보육원을 탈출하는 어린 아이가 그려내는 가족이다. 그 중심에는 갓난아기 우성이가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공전하듯, 우성이를 중심으로 사건들이 전개되고 사람들이 변화된다.


갓 태어난 피붙이 아기를 팔려는 엄마, 거래를 알선하고 중개하는 두 남자, 그리고 아기 우성.


아기를 거래하기 위해,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떠났지만, 그들의 도망은 어느새 즐거운 소풍이 되고 아름다운 여행으로 바뀌어간다. 가짜 가족임을 숨기기 위해 ‘가족 흉내’를 연기했지만, 그들은 어느새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족이 되어간다. 모텔방에서 아기 우성이에게 분유를 먹일 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 남남의 존재들은 피로 맺어진 가족보다 더 민주적으로 각자 자신들이 할 일을 결정한다. 가족이 너무나 익숙해서, 너무나 편한 관계라서 우리가 잊고 살던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진심과 사랑, 존재에의 감탄과 감사가 역설적이게도 가짜 가족에서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진짜 가족처럼 변화해가는 가짜 가족을 바라보며, 우리가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의 가족을 되돌아보았다. 피붙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 모인 혈연 가족은 그 유일무이한 존재론적 관계 때문에 서로를 갈구하면서도 서로를 억압하고 서로를 원망하면서도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영화와 달리 현실 한가운데에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가족 공동체의 숙명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와 게젤샤프트(Gesellschaft)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수십 년 전 대학생 시절에 배웠던 낡은 용어가 깊은 기억 저장소에서 먼지를 털고 깨어나 의식으로 올라온 것이다. 게마인샤프트는 혈연이나 지연 등 애정이나 본질의지를 기초로 결합된 공동체를 가리킨다. 게젤샤프트는 같은 이익이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선택의지에 의해 결합된 이해타산적인 공동체를 가리킨다.


그런데 영화 속 가족은 게마인샤프트가 아닌 게젤샤프트에 가깝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 가짜 가족은 아이를 팔려는, 아이를 팔아 돈을 벌려는, 보육원을 탈출하려는, 저마다의 목적과 의지에 따라 결성되었으므로 일종의 이익공동체인 셈이다.


우성이를 입양하려는 부모에게 평범한 가족처럼 보여 '거래'가 잘 성사되게 하기 위해 가짜 가족은 진짜 가족 흉내를 낸다.


이익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이익공동체 가짜 가족이 진짜 가족 흉내내기를 넘어 진짜보다 더 진짜인 가족처럼 변화하는 과정은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듯 잔잔해보이지만, 명확한 전환점도 존재한다.


전환점은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이다. 모텔에서 하루를 정리하던 이들은 다음날이면 생모의 눈앞에서 버림받고 팔려나갈 운명인 갓난아기 우성의 가엾은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우성아,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며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인사말을 하게 된다. 이후 이들은 바통을 건네주고 건네받듯 서로 이름을 불러주며 이 말을 해주게 된다. "ㅇㅇ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태어나면서부터 버림을 받았거나 자신의 인생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여겨 자기 존재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며 잊고 살았을 미혼모 소영, 브로커 상현과 동수, 보육원을 탈출한 해진. 이들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든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을 통해 받아들임과 긍정을 경험한다. 생각과 마음, 삶의 방식에 대대적인 방향 전환이 일어나는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의 순간이다.


상현과 동수 두 브로커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뒤쫓았던 경찰 수진과 이형사의 시선과 행동 역시 우리의 통념을 벗어나있다. 범죄 현장을 덮치거나 범인을 체포하는 보통의 경찰이 아니라 지켜보고 이해하고 기다리며 설득하는 '특별한' 경찰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범죄자와 경찰의 관계가 아니다. 수진은 아기 우성이 최적의 조건에서 입양될 수 있을 때까지 맡아 키우며 정성과 사랑을 쏟는다.


경찰의 차갑고 냉정한 시선은 아기를 버렸다가 다시 입양시키려는 엄마의 처지를 이해하는 공감의 시선으로 변화된다.


돈과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 이용하고 활용하기 위해 결성된 가족 아닌 가족. 이 가짜 가족은 본래 목적인 돈과 이익을 제쳐두고, 아니 완전히 잊어버리고, 서로의 처지와 존재를 이해하고 배려하기 시작한다. 나의 이익보다 남의 이익을 위해, 나의 미래보다 남의 미래를 위해, 타인의 더 나은 삶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로 변화하며 가짜 가족은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족이 되어간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브로커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혈연이 배제된 가족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 가족 #메타노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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