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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todo Jun 29. 2022

36년 만의 귀환, 가슴 설렘 줄고 뜨거움 더욱 강렬

탑건:매버릭, 박진감을 즐길 것인가 드라마를 느낄 것인가

무려 36년 만의 귀환이다. 본편과 후속 편 단 두 개의 형제작이 나오는데 그리도 길고 오랜 세월의 강을 건너온 영화는 흔치 않을 것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한 세대를 뛰어넘었다는 표현은 그 격세지감을 설명하기에는 올드하고 진부할 뿐만 아니라 실감마저 나지 않는다. 게다가 '도대체 왜 지금' 후속 편이 나와야 하는지 배경이나 까닭이나 당위성을 당최 모르겠다. 하지만 톰 크루즈가 주연을 한 영화니까... 본편이 명작이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쇠붙이가 자석에 끌려가듯 참새가 방앗간 가듯 영화관으로 향했다.


본편이 개봉한 1986년과 후속 편이 개봉한 2022년은 밀레니엄이 달라진 만큼 완전 다른 세상이다. 산업화 시대는 정보화시대를 지나 4차 산업혁명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국제 질서는 달라졌지만, 비슷하기도 하다. 80년대의 냉전은 사라졌지만, 다시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었고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여전하다.


젊은 탑건이 36년 만에 중년 탑건으로 돌아왔다. 외모는 달라졌지만, 인물은 변하지 않았다.


머리 아픈 얘기는 각설하고...


박진감 넘치는 비행 장면은 본편 못지않게 후속편도 훌륭하다. 영화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수십 년 세월을 건너왔으니 후속 편이 보여주는 화면은 영화의 첨단 신기술들을 뽐내듯 본편에 비해 훨씬 황홀한 영상을 보여준다.


본편은 당시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촬영을 했다고 하는데, 그 덕분인지 몰라도 CG나 특수효과에 기대기보다는 실물의 F-14 전투기들이 거칠게, 하지만 강렬한 멋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후속 편 역시 CG나 특수효과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비행 모습을 최대한 담아냈다고 전해진다. 시각의 말초신경이 최대한 강렬하게 자극되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반면, 어딘지 모르게 감수성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내 시선은 박진감과 볼거리에 빠져들지만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감수성은 메말라지는 느낌이다. 본편에서 우리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던 창공과 노을빛 하늘, 고독한 모터사이클 주행과 주옥같은 영화음악 'Take My Breath Away'가 주는 가슴 설렘은 아쉽게도 매우 매우 느끼기 어렵다.


가슴 설레게 했던 고독한 모터사이클과 로맨스 장면은 후속편에서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비행과 전투 장면 눈요기거리만 있을 뿐 다른 건 없을까? 그건 아니다.


함께 영화를 본 아내는 졸린 걸 겨우 참았다고 했다. 비행과 전투 장면에 조금 볼거리가 있지만 별 관심이 없는 분야이고 줄거리도 없다고 했다. 보기에 따라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재미있게 감상했다.


내가 재미있게 감상한 비결은 본편의 줄거리와 그 정서를 정확히 기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6년 전 개봉한 영화를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내가 천재도 아닌데, 당연히 36년 전에 본 걸 다 기억하지 못한다. 수십 년 전 영화를 기억해내라는 게 아니다. 흔하디 흔해진 OTT 채널의 힘을 빌리라는 것이다. 복습의 의미든 예습의 의미든 OTT에서 본편을 미리 꼭 한 번 봐 두시기를 강추한다.


며칠 전 본편을 본 나는 이번 후속 편이 상영을 시작하자마자 매버릭의 삶과 마음 상태를 내 삶과 마음처럼 느끼며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전투기의 마하 9 도달 시험에 나서는 매버릭의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다. 비행을 자신의 전부로 삼고 살아온 매버릭의 삶과 인생에 관객이 몰입하게 하는 도입부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암시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매버릭' 미첼 대령, 그는 두려움과 한계에 도전하고 돌파하는 영원한 현역 파일럿이다.


조종사가 필요 없는 무인기(드론)가 조종사가 필요한 유인기를 대체해가는 시대 변화와 신구의 갈등 상황에서 매버릭의 시험 비행 강행은 단지 36년의 격세지감을 현상적으로 보여주거나 과거 방식을 고수하려는 고집스러움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매버릭이라는 인물이 어떤 철학과 삶의 방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영화가 단지 화려한 액션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명령을 받고 노스 아일랜드에 도착한 매버릭이 탑건 항공학교에 걸려있는 30여 년 전 아이스맨 등 젊은 동료들과의 사진, 그리고 지금은 태평양 함대 사령관이 된 아이스맨의 사진을 보며 감회에 젖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로 매버릭의 인물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종의 '정치'를 하지 않고 오롯이 전투기와 비행만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온 매버릭의 인생관과 올곧은 의지가 나에게 전해져 오며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그렇다. 이 영화는 물론 화려한 비행과 전투 장면의 눈요기가 나를 즐겁게 해 주었지만, 그보다 더 즐겁고 그보다 더 내 시선과 마음을 몰입시켰던 요소는 매버릭의 삶이었다.


동료는 진급해 태평양 함대 사령관에 올랐지만, 매버릭은 전투기와 비행만을 사랑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 본인이 살고 싶은 방식을 위해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영화는 시작부터 보여주었다. 최고의 탑건 매버릭은 영원한 현역 대령으로 남아있고, 그와 경쟁자이지만 2위의 실력자였던 아이스맨은 함대 사령관이라는 최고 지휘관이 된 대조적인 인생의 경로 말이다.


젊은 탑건 시절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매버릭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고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상습적인 명령 불복종의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간과 기계의 한계점에 과감히 도전하여 성공해내는 출중한 실력까지 갖춘 매력적인 인물이 매버릭이다.


드라마적 요소는 하나 더 있다.


구스의 아들 루스터가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애창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매버릭은 슬픔과 회한에 잠긴다.


젊은 탑건 시절 서로 믿고 의지했던 절친이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난 구스의 아들 루스터와의 관계다.


루스터가 술집 바의 피아노로 아버지 구스의 애창곡 'Great Balls of Fire'를 즉석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이 따라 부르는 모습을 매버릭이 우연히 바라보게 되는데, 매버릭은 자신과 구스가 똑같은 모습으로 함께 신나게 노래했던 행복한 과거를 회상하게 되고 깊은 슬픔과 회한에 빠진다.


아버지와 매버릭의 관계에 이어 매버릭이 자신의 사관학교 입학을 여러 번 막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루스터는 훈련 과정에서 줄곧 교관 매버릭을 미워한다. 그러나 결국 적진에서의 생사를 건 전투에서 매버릭은 자신을 희생해 루스터를 살려내고, 루스터는 다시 목숨을 걸고 매버릭을 살려내는 관계가 된다.


요약하자면, 앞서 말한 매버릭의 인물됨(캐릭터), 매버릭과 루스터의 관계가 이 영화를 끌고 가는 뼈대이자 드라마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OTT를 통해 탑건 본편을 꼭 먼저 복습을 겸한 예습 삼아 보시라. 그러고 나서 후속 편 탑건-매버릭을 본다면, 두 영화의 멀고 멀었던 세월 격차는 사라지고 주인공 매버릭의 젊은 시절 마음속 상처와 고통이 그대로 내 가슴에 전해져 오며 곧바로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PS

1. 비행 장면과 액션만 즐기려면 후속 편만 봐도 충분하다.

2. 이야기 뼈대인 드라마 요소까지 즐기고 싶다면 반드시 본편을 먼저 감상하라.

3.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니 액션에 흥미가 없는 분이라면 자칫 지루할 수 있다.

4. 달달한 로맨스는 기대하지 마라.

5. 로맨스 감수성이나 키스신, 베드신은 수십 년 지났어도 달라진 게 없다.

6. "그런 표정 짓지 마." 옛 연인 페니도 여러 번 말하고, 같은 남자인 혼도 역시 이 말을 한다. 톰 크루즈의 그 표정은 정말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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