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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Dec 20. 2021

시엄마, 친정엄마 동거 시작

모닝커피

토요일 아침, 비가 오네요.

어머니들의 아침식사가 끝나고 커피를 준비합니다.

두 분 모두 올해 아흔이신데 매일 아침 식사 후에는 꼭 커피를 드십니다.

커피는 **식품의 믹스커피.

커피 한 봉에 설탕 한 티스푼을 첨가하는 것은 친정어머니의 레시피입니다.

충분히 달달한 맛인데도 아흔의 나이가 가져가버린 입맛에는 역부족이라

한 숟갈의 설탕을 보태어야 달달함이 느껴진다고 하네요.

처음엔 별스럽다 싶었는데 지금은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갖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는 일은 속상하고 슬픈일이니까요.

입맛만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기력도, 걸음도 잃어버렸고 소리도 가물가물 합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잃어가겠지요.

한 집에 기거하지만 어머니 두 분은 따로국밥처럼 다른 일상을 보냅니다.

수퍼싱글 침대 위가 세상의 전부인 친정어머니는

하루 세 번의 식사와 몇 번 쯤 침대 발치에 붙여놓은 이동로 옮겨 볼일을 보시거나

침대에 앉아 창 너머로 보이는 건너편 건물의 지붕과 그 위의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일상의 전부입니다.

깊고 푸른 동해바다를 훑고 다니던 젊은 날의 모습은 찾아 볼 수없고

이제는 가끔 먼 기억속에서나 건져올립니다.

거동이 가능한 시어머니의 일상도 별반 다르지는 않습니다.

한 걸음이 한 발자국만큼도 되지 않고 그나마 열 보를 넘기면 쉬어야 하니

마음처럼 자유로운 이동은 꿈에서나 가능하겠지요.

화장실을 사용하시고 주방으로 베란다로

가끔은 사돈 방까지 진출해 보기도 합니다만,

아흔이 되어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돈지간이라는 관계인가 봅니다.

동거를 하신지 석 달이 되어도 아직 대면대면 합니다.

커피잔 세 개를 나란히 놓고

설탕을 추가한 친정어머니의 잔에는 스푼을 걸쳐 표시를 합니다.

이젠 깜빡깜박하는 빈도가 잦아 매번 확인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비 내리는 아침의 커피향은 짙게 퍼지고

듬뿍 젖은 건너편 건물의 오렌지색 지붕에 뜬금없는 문학적 감성이 더해집니다.

언젠가 보았던 이국의 어느 마을, 끝 없이 펼쳐진 오렌지색 지붕들을 떠올립니다.

바다에서 살았던 친정어머니는 커피향을 마시며 무엇을 생각할까요.

깊은 산골에서 살았던 시어머니는 또 어떤 것을 떠올렸을까요.

오렌지색 지붕을 떨쳐내고 이 방, 저 방 차례로 문을 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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