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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24. 2022

겉마음, 속마음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시어머니는

설 쐬고,

일주일 후 생신 지나고,

아흔 하나를 맞는 치레를 하는지 연속으로 병원나들이를 했습니다.

주기적으로 하는 설사로 병원을 다녀오고

며칠 후 온 몸이 가려워 긁다가 또 다시 병원을 찾았지요.

근데요.

이 모든 증상들은 심해지고 나서야 제가 알게 된다는 것.

제 무심함을 탓하시겠지만 저도 나름 변명을 한다면

어머니께서 무조건 숨기신다는 게 문제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병은 드러내라고 했지요.

그래야 치료를 하고 원인을 찾고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해드릴 수 있는데

어머니는 무조건 숨기고 봅니다.

설사의 원인은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 못해 생기는 게 아닐까 싶은데

어머니는 거의 씹지 않고 삼키는 수준으로 식사를 합니다.

게다가 과일이나 간식이나 기타 모든 음식들은 눈에 보이면 즉시 드시려고 합니다.

두었다 드시는 일은 생전 없으셨다고 하네요.

많이 씹어라, 뒀다가 출출할 때 드시라는 말들을 잔소리로만 듣다가

탈이나면 '그것 봐라'하고 걱정 들을 것 같은지

아니면 병난 시어머니 싫다할까 그러는지 혼자서 감당하지 못할 때까지 숨기다 들킵니다.

그러면 저는 또 속이 상하겠지요.

어머니의 그런 행동들이 처음 두세 달은 견딜수 없을 만큼 힘들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러려니 합니다. 

무심해진 것이라기 보다 적응하는 거라고 봅니다. 

병원에서의 대기시간은 어머니들에게 고역입니다. 

가끔 아흔이 넘은 노인들에게 '프리패스'카드를 주면 어떨까 싶을 지경이지요.

휠체어에 앉아 한 시간을 넘기는 일은 

이미 굽어버린 등이며 꺾이는 허리, 저려오는 다리에 감당하지 못할 통증을 불러옵니다.

어머니가 힘들게 버티는 그 시간 동안, 또 다른 탈이라도 날까봐 저는 발을 동동거리며 마음을 졸입니다. 

설사의 원인은 이미 아는 것이고

가려움 또한 노화현상 중 하나라네요.

진료를 마치고 약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길,

시어머니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또 흘립니다.

'내가 죽어야지 니가 고생을 안 할낀데. 우째 이리도 죽어지지 않는지. 더 살아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왜 안 죽고 살아있는지. 니는 내가 귀찮제? 자꾸 아픈 내가 밉제?'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 말들을 중얼중얼 내뱉습니다.

압니다. 어머니는 내게서

 '어머니가 왜 돌아가셔요. 저 힘 하나도 안들어요. 자꾸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하나도 귀찮지 않고 밉긴 왜 미워요. 오래오래 사세요.'

이 말이 듣고 싶어 옆구리를 찌른다는 걸요. 

저는 아무 대답도 없이 휠체어만 밀어요. 

넋두리 같은 그 말들은 너무 많이 들었고 해야 할 대답도 이미 오래 전에 할 만큼 했으니까요.

알아요. 그래도 또 해야 한다는 걸. 

하지만 그런 말은 듣는 순간 짜증이 나요. 그건 결코 적응되지 않아요.

'바람이 차네요.' 

못 들은 척하고 마스크를 올려주고 옷깃만 여며드렸어요.

휠체어는 보도블록이 기울어진 쪽으로 말 안 듣는 강아지처럼 저를 끌어당깁니다.

저도 제가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어요.

'맛있구나' '애썼다' '고맙다' 단답형이라도 이런 말들이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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