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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04. 2022

동거 극복기

장기요양 진단서

  친정어머니의 장기요양 등급 변경을 위해 오늘까지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병원에 가는 일은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예삿일이 아니지요. 어머니들의 빌라는 3층입니다. 물론 엘리베이트는 없구요. 시어머니는 부축을 하고 천천히 이동이 가능하지만 친정어머니는 전혀 걸음을 걸을 수 없는 상황이랍니다. 그래서 무조건 업어야 해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기로 했지요. 약 오백미터 정도 거리입니다. 

  먼저 유일한 의상인 잠옷을 벗고 외출복으로 갈아입혀야 하는데 어머니는 잠옷 위에 더깨 입히라시네요. 털코트로 감싼 어머니의 육신은 초등학교 삼사학년 쯤 되어 보입니다. 잠시 기다리시게 하고 휠체어를 빌라 현관 앞에 펴놓고 올라와 어머니를 업었어요. 음, 여기로 오실 때보다 쬐끔 더 무거워졌네요. 어머니를 휠체어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묶어두고 다시 삼층으로 올라갑니다. 제 외투를 입고 가방도 챙겨야 하니까요. 

  어머니는 참으로 오랜만에 외출을 했습니다. 입춘인데 날씨는 그제보다 더 쌀쌀하네요. 봄을 시샘하는 바람일까요? 고개를 돌려야 할 만큼 바람이 거칩니다. 걱정되어 휠체어를 멈추고 어머니를 살폈습니다. 털 외투에, 털모자에 마스크까지 쓴 덕분인지 괜찮다고 합니다. 어쩌면 살갗을 스치는 바람에서 아직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병원 오후 진료 시간 십오분 전이네요. 좀 일찍 도착한 것은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편입니다. 대기자가 많으면 엄청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어머니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한 시간이거든요. 그런데 이 병원은 좀 이상합니다. 장기요양에 필요한 진단서를 발급할 수 없다고 하네요. 이유는 어머니가 네 번 밖에 진료를 받지 않아서랍니다. 와상인 노약자가 병원진료를 얼마나 자주 받는다고, 따지고 떼를 썼어요.  가만히 보니 실속없는 환자라 천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기분이 몹시 나빴습니다. 

  그 의사선생님은 서류를 작성하시는 폼이 너무 엉성하더라고요. 연세는 많으신데 신참 같은 느낌? 수납을 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안 해보셨나봐요. 건강보험공단으로 바로 보내게 되어있는 서류를 직인을 찍은 다음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시스템이 안되어 있으니 직접 접수하라네요. 처음부터 설명을 했으면 노련한 다른 병원으로 갔을텐데, 혹시 등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하다보니까 든 생각인데 그 서류도 문제가 좀 있어요. 늙어서 인지장애가 생기고 거동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을 어떤 병명을 기재해야 할까요? 이전의 의사선생님들이 적어 주었을 때 미처 챙겨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빌라 현관에서 내려올 때와는 역순으로 귀가를 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서 한 시간을 넘게 보낸 어머니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던 시어머니는 스스로 만든 걱정에 치여 녹초가 되어 계시네요. 걱정을 사서하시는 통에 제가 아주 죽을 맛입니다. 효과만 있다면 걱정 인형을 백 개 쯤 온 집안에 늘어놓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어머니는 외투를 벗고나자 긴 한숨을 내쉽니다. 예의 그 숨비소리를요. 그 소리는 저를 자책하게 만드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때문에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지요. 서류를 제출할 시간을 핑계로 저는 자리를 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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