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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04. 2022

동거 극복기

시작

  동해안 작은 어촌마을의 해녀였던 친정어머니와 경상도 내륙의 농촌마을에 살던 시어머니가 한 지붕에 든 사연은 이러합니다. 시어머니의 큰 아들인 나의 남편과 친정어머니의 큰딸인 저는 방이 세 개인 빌라에 살지요. 아들은 장가를 갔지만 직장관계로 주중 이삼일은 우리집으로 퇴근 하고 딸아이는 아직 출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방 세 개의 주인이 다 있는 상황이란 이야깁니다.

  친정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이십팔 년을 더 사셨네요. 해녀였던 어머니는 골다공증이 심합니다. 근육통은 평생 살면서 고생한 만큼 앓으니 아프지 않은 날이, 아니 순간이 없답니다. 여든이 넘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딛는 듯 조심스러웠지요. 그러다 세 해 전에 요양병원 입원을 원하셨어요. 운동이라고 마당을 거닐다 넘어진 다음 거동이 너무 힘드셨어요. 게다가 밥 해먹는 것조차 버겁다 판단이 되셨던지 그 동안 모아두신 쌈짓돈을 내밀며 입원시켜 달라고 부탁하시대요. 

  두 해는 잘 견디셨어요. 실제로는 아닌 것 같은데 말로는 '괜찮다','좋다' 하셨지요. 하지만 전세계인을 경악시킨 코로나로인해 자식들의 면회가 막히자 어머니는 무너지셨어요. '노인 우울증'이래요. 식사를 거부하시는 바람에 병원이 비상이 걸렸지요. 하지만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결국 퇴원을 결정하셨어요. 퇴원하신 날, 잠들지 못하고 내쉬던 한숨이 그 옛날 바다를 누빌 때 들리는 숨비소리 같았어요. 그 때문에 저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답니다. 

  시어머니는 시집간 지 칠십년이 다 되어 살던 집을 떠나왔습니다. 죽을 때까지 버틸거라 장담하셨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요. 어머님도 팔순이 넘어서면서 억척같이 버텨온 삶에 변화가 생겼지요. 걸음이 더디어 밭으로 나가지 못하자 마당을 모두 갈아 엎어 밭으로 만드셨습니다. 식사는 대충 때우면서 결코 농사일은 손에서 놓을 수가 없으셨지요. 드시지도 못할 온갖 곡식을 마당에서 재배했지요. 고랑을 엎드려 기면서 풀을 뽑는 모습에 우리는 아연실색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식사는 밥 한릇에 된장 한 숟가락이 전부였지요. 제가 만들어간 반찬들은 함께 식사할 때만 드셨어요. 우리가 돌아가고 나면 그것들은 냉동실에 가뒀지요. 아까워서. 냉장칸은 텅텅 비었지만 냉동칸은 손가락 들어갈 틈도 없이 빼곡합니다. 언젠가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너희들 오면 같이 먹을라고'였답니다. 아흔이 되자 현관문 턱을 넘지 못해 마당으로 나오다 걸려 굴렀답니다. 결국 그 일이 있고난 다음에야 '나 좀 데려가라' 하셨지요.

  먼저 이야기 했듯이 우리집 방은 세 개 뿐입니다. 어머니들도 사돈지간이라 방을 함께 쓰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요. 한 블록 건너에 있는 빌라에 두 분 살림을 차렸습니다. 작은 방이지만 거기도 방이 세 개입니다. 하나는 친정어머니가, 또 하나는 시어머니.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제가 사용합니다. 틈나면 이렇게 글도 쓰고 가끔 드러누울 때도 있습니다. 솔직히 두 분을 모시기 전에는 몰랐던 어르신들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 힘겹습니다. 따로 살면서 가끔 볼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뛰어 넘을 수 없는 세월의 장벽 같은, 대화가 불가능한 그런 상황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런 상황들이 알게모르게 저를 많이 힘들게 했나봅니다. 어느 순간 문득,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니 피폐한 상태였어요. 다 알고, 각오하고, 공부도 했는데, 그 모든 것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제 마음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더라고요. 속상하고, 짜증나고, 서운하다가 결국 두 어머니가 미워졌지요. 두 분 모두 치매 초기에 드신 것 같아 안쓰러웠던 마음도 어느새 슬그머니 미움으로 바뀌었더라고요. 다시 한번 저를 재정립해야 했어요. 매일 구호를 외치는 훈련병처럼 저도 그렇게 제 자신을 쇄뇌시켜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저의 자만이었습니다. 저의 멘탈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지요. 그리고 생각보다 속도 좁더라고요. 까지껏, 치매환자라고 생각하면 뭐 갈굴게 있겠습니까. 이제 매일 일기를 쓰면서 저를 돌아볼까 합니다. 더불어 제 일기를 보시고 공감하거나 도움이 될만한 분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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