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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16. 2022

최여사 일기

아들과 며느리 차이

  가족요양을 시작하는 바람에 한동안 여유가 없었습니다. 컴을 켜고 앉을 시간이 없어 노트북을 어머니들 계시는 집으로 옮겼는데 글만 쓰고 올리지 못했네요. 인터넷이 안되서...

최여사는 시어머니시고 고여사는 친정어머니입니다. 상태기록지에 기재하듯이 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3월 3일 

  감나무를 심었다. 대봉 30주와 덤으로 따라온 사과대추 3주, 석류 2주.

산비탈 밭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고, 물을 대고, 거름을 내는 일은 우리 부부를 파김치로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뜻밖에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냥’이란다. 그냥 아들이 보고 싶어서라는 어머니의 말이 걱정되어 바로 어머니들 집으로 갔다.

   어머니는 아무 일 없단다. 그럼 갑자기 왜 아들이 보고 싶었을까요? 했더니 불쌍해서란다. ‘아들이 왜 불쌍해요? 어머니들 챙기느라 이집 저집 돌아다니는 건 며느린데?’했더니 ‘늙은이들 밥 차리느라 며느리가 이집 저집 돌아다니니 아들이 제때 밥이나 얻어먹겠나?’하신다.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건 자식 사랑의 차원을 넘어선다. 고개가 절로 흔들거린다.

  이참에 며느리에 대한 사랑도 알아보자.  ‘그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며느리는 불쌍하지 않아요?’했더니 그건 며느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다. 어머니의 사고방식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조족지혈이다, 그러려니 하자. 아, 그래도 얄밉다.      


3월 5일 – 샘일까 걱정일까     

  식혜를 만드느라 퇴근 후 다시 어머니들 집에 들렀다. 엿기름 삭이는 시간을 맞추려다보니 어쩔 수 없었는데 어머니는 또 걱정이 늘어진다. 도대체 세상의 모든 일상을 걱정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 진정한 어머니의 특기다. 그런데 그 모든 걱정거리는 모두 자식들을 위한 것이란다. 자신에게 연관된 걱정은 오직 죽는 일과 관련된 것 뿐. 나 죽으면 묫자리는 어쩌나, 화장은 뜨거워서 싫은데, 큰일 치르느라 자식들이 힘들면 어쩔까나. 

  몸에도 좋지 않은(근거 없는 어머니 생각) 감주를 왜 하냐. 왜 쓸데없는 일로 밤마실을 다니느냐. 그러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냐. 잔소리를 듣는 것에 익숙하지만 엄마를 위해 식혜를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슬슬 짜증스럽게 들리기 시작한다.   

   

3월 6일     

  아침에 잔소리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젠 잔소리가 아니라 하소연이 되었고 하소연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 나의 한숨을 자아낸다.

 ‘늦은 밤에 길 나서는 니 때문에 밤새 잠도 못 잤다. 그 감주를 꼭 해야 되나? 그러다 무슨 일 생기면 나는 우짜라꼬 ’

(참고)

  두 집 사이는 일직선으로 250미터 떨어졌고, 친정어머니는 아주 소식하는지라 감주는 부족한 열량을 채우기도 하고 입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마시기 힘든 물을 대신한 유일한 음료라서 하루도 없어서는 안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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