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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19. 2022

고여사 일기

매니큐어를 바르다

4월 7일 –매니큐어     

  어머니들의 무료함을 덜어 줄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매니큐어를 떠올렸다. 따로 치장이라고는 할 일 없는 어머니들. 손톱에 색색깔의 매니큐어를 바름으로 조금이나마 생기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손톱에 색을 입히는 일은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야심차게 준비한 열두 색깔의 매니큐어는 뚜껑도 열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시어머니는 배탈이 났고 엄마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목욕한 지 일주일을 넘긴지라 엄마를 꾄다. 업혀서 욕실로 가야 하는 엄마는 그런 상황들이 미안해서인지 자꾸만 목욕을 거부한다. 

  시원하게 씻고 나자 엄마의 마음이 살짝 누그러졌는지 다시 권하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오른손 열 손톱에 빨강 매니큐어를 칠했다. 관절이 불거져 갈고리 같은 손, 온통 주름진 손에 붉은 기운이 어렸다. ‘아이고, 이 뻘건 거를.’ 엄마는 두 손을 펴들고 어쩔 줄을 모른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이처럼 깔깔댄다. ‘처녀 적에도 바른 적이 없는 거를 아흔이 넘어서 다 해보네.’ 가만 보니 그렇게 싫은 기색은 아니다. 

  왼손엔 푸른 바다색을 입혔다. 평생 더듬고 다녔던 바다속을 떠올리라고. 인고의 세월, 지난했던 삶은 그 당시엔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어도 지나고 나면 한 줄기 그리움으로 남는다. 어쩌면 돌아보지 않으리라 했던 순간들마저 아릿한 그리움이 되듯 나는 엄마가 바다를 떠올렸으면 한다. 건강하고 활기차던 그 시절을. 엄마는 한동안 양손을 올려 빨갛고 파란 손톱을 들여다 보았다. 손톱마다 어린 엄마의 기억은 뭘까. 뭐든 좋은 기억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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