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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19. 2022

최여사 일기

식습관

4월 7일 –설사     

  꼭 한 달 만이다. 한동안 설사를 하지 않는다 싶더니 꼭 한 달 만에 설사 했다. 지난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변기가 더럽혀져 있어 여쭈니 설사를 했고 배가 아프단다. 사다 놓은 약을 마저 드셨기에 죽을 쑤고 약국엘 다녀왔다. 

  설사 한 것을 감추고 싶었던지 어찌 알았냐고 묻는다. 더럽혀진 변기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전 다 알아요. 그러니 아프거나 문제 있으면 바로 말씀하세요.’하고 웃었더니 ‘아이고!’ 한다. 잠깐 무슨 마음인지 생각해본다. 미안함? 무안함? 자존심? 그게 뭐가 되었던 그 연세에서는 버려도 될 감정들인데 싶다가도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가진 마지막 존엄성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후에 쌀을 가지러 기계에 갔더니 은정이 전복죽을 끓였다며 다녀가란다. 그녀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끓이는 김에 더 준비한 것이니 어머니들 드리란다. 오지랖도 넓다. 남의 어머니들까지 챙기는 것이 딱 천사다. 은정 덕분에 어머니는 저녁 식사로 전복죽 한 그릇을 다 드셨다. 많이 힘들지 않고 하루를 넘기니 다행이다 싶은데 어머니는 그예 한 마디로 나를 넉다운 시킨다. 역시나 최 여사다.

  ‘이번 참에는 갈라나 했는데 안 가고 또 사네.’


4월 9일 –커피     

  사흘 동안이나 속이 편치 않았던 어머니는 기운이 없단다. 설사 때문에 줄곧 죽을 드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죽은 환자들이나 먹는 거라는 인식이 강하니 먹어도 영 식사를 한 느낌은 아닐 터이다. 평소 아침 식사 시간보다 일찍 밥 달라고 보채신다.

  밥과 국, 가자미조림, 계란찜을 담은 그릇들은 깨끗이 비우셨다. 상을 물리더니 커피를 대령하란다. 이제 막 밥을 드시게 됐는데 커피는 아직 무리라고 했더니 금세 울상을 짓는다. 매일 한 잔 이상은 꼭 드시는 커피를 사흘이나 못 드셨으니 간절하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막 회복되는 참인데 무리다. 오늘 컨디션이 나아지면 내일 드리겠다는 약속으로 겨우 무마한다.

  이번에는 꼭 한 달 만이지만 어머니는 설사가 잦다. 음식을 급히 드시는 습관도 한몫하는 것 같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는 습관, 채 넘기기도 전에 다음 숟가락을 준비하는 습관, 숨 고를 여가 없이 떠먹는 습관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매번 식사 때마다 상 앞에 지키고 앉아서 제재를 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랬다간 밥맛이 떨어질 것이다. 생수를 사서 마시는데 그걸 탓하길래 앞으로는 보리차를 끓이기로 했다. 

  요양보호사의 친정어머니가 어머님처럼 손을 많이 떠셨다고 한다. 그분도 매일 커피를 마셨는데 어머님보다 더 많이 드셨단다. 병이 생겨 수술을 받고 입원하는 과정에서 한 달 이상 커피를 마시지 못했는데 손 떠는 것이 멈췄단다. 혹여 수술받은 것과 관련짓기도 했는데 퇴원 후 다시 커피를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손을 떨었다고 한다. 

  어머니도 손을 많이 떤다. 그러면서도 미리 숟가락에 음식을 떠서 다 먹을 때까지 들고 기다린다. 손은 점점 더 떨리고 음식물은 바닥으로 하나씩 떨어진다.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다. 숟가락은 언제나 준비! 상태다. 커피를 끊어보면 어떨까 싶지만 어림없을 것 같다. 하루 한 잔, 모닝커피 마시는 낙으로 산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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