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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20. 2022

최여사 일기

늙는다는 것은

4월 12일     

  여러 가지 이유로 혈관이 막혀 운동신경이 정지되는 병. 정확한 병명은 모른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이런 병에 걸렸다. 병인지 증상인지조차 나는 알 수 없는데 남편에게 전해 들은 말로는 혈관이 가늘어 혈압이 오르면 일시적으로 막히는 거란다. 

  혈관이 막히는 순간 어머니의 신체는 모든 움직임을 멈춘다. 길을 걸을 때면 그 자리서 풀썩 쓰러지고, 노인정에서 화투놀이를 하다가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는다. 밭고랑에서 엎어져 주변 할머니들이 방으로 들인 적도 있다. 기능이 멈추는 순간은 대게 혈압이 높아지는 순간이다. 날이 뜨거워서, 쭈그리고 앉아서 밭 일을 하거나, 잃어버린 10원짜리에 연연하는 순간 어머니는 그대로 생기를 잃고 무너져 내린다.

  쓰러진 어머니는 무겁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겁다. 꼿꼿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축 늘어져 한쪽을 올리면 다른 쪽이 쳐진다. 침대와 변기는 붙어 있지만, 발을 바닥에 딛고 엉덩이를 옮겨야 하는데 어머니는 그 앞에 꼬부라졌다. 그 순간에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두려움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완된 괄약근 때문에 오줌을 지려 바닥이 흥건하다. 젖은 옷을 벗기고 바닥을 닦고 어머니의 몸을 닦는 일과 침대로 올리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나의 하루 치 에너지를 바닥났다.

  뭐라 말을 하지만 어눌한 발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때쯤 드는 생각은 민망함과 미안함일 게다. 그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아직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눈빛이 그렇다. 나는 그 눈빛이 부담스럽다. 울 것 같은 눈빛. 물기가 그렁그렁한 애절한 눈빛. 차라리 눈을 감고 계시는 게 편하다. 그 눈빛은 내게 무언의 요구를 한다. 애써 정당화하려는 눈빛이다. 한두 번이 아니니 눈을 감고 담담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시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 건강 하고픈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만 새로운 병명들과 마주한다. 그것들이 모두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다고 낙담하는 것은 오만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된다. 거부하고 반항할수록 부양하는 자식만 힘들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필요하면 치료를 받거나 요양을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미안하다는 이유를 들어 자꾸만 숨긴다. 자연적인 노쇠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들키면 ‘죽어야지, 이러고 더 살면 니들이 힘들어서 우야꼬.’ 푸념이다. 그 푸념을 듣는 자식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는다. 

  어른을 모시는 일이 힘든 것은 그런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다른 마음. 어쩌면 둘 다 같은 마음이다. 상대방을 위해서라는 그 마음은 서로가 다르게 해석하면서 갈등이 생긴다. 솔직하게 드러내는 며느리와 빙빙 돌려 눈치를 보는 시어머니. 따지고 보면 둘 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며느리가 솔직한 것은 어차피 감당할 일이니 힘을 빼지 말고 어른을 위해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고, 시어머니가 빙빙 돌리는 것은 자신으로 인해 힘든 며느리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급속하게 성장한 우리의 환경은 그 둘의 차이를 너무도 크게 만들었다. 이해하려고 애쓰고 또한 이해한다고 해도 극명한 가치관의 차이는 감정적 대립을 피할 수 없다. 이미 인지 능력이 떨어진 어머니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며 앞으로 다가올 자식들과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아직 작은 힘이라도 남았을 때 열심히 늙는 공부를 해야겠다. 아름답게 늙기 위해, 현명하게 늙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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