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Apr 22. 2022

최여사 일기

고부갈등은 어긋난 대화에서 시작된다.

4월 8일 -고부갈등은 어긋난 대화에서 시작된다.     


  “어머니, 오늘은 좀 어떠세요? 배 아프신 건 괜찮으세요?”

어머니는 욕실에서 세안 중이었다. 전날 장이 탈 나서 설사를 하고 종일 누워계셨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어머님을 보자 다행이다 싶었다. 

  “괜찮으니 일어나 움직이지.” 어김없는 어머니 식 대답이다. “그래, 괜찮다.” 혹은 “좀 났다.”라고 하면 될 것을 어머님은 언제나 되묻기 식이나 따지기 식으로 대답한다. 시골에 계실 적에야 가끔 뵈니 그러려니 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도 하룻밤 지나면 벗어날 상황이니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모르는 것이 약이려니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삼십오 년 동안 어머니와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지시사항이었다. 적적하실까 싶어 말을 건네면 돌아오는 대답은 그다음 말을 잇지 못하게 한다. “오늘은 비가 오네요.”하고 인사를 건네면 “그래서, 어쩌라고?”가 어머님의 대답이다. 그 대답 뒤에는 어떤 말로도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가 오니 쌀쌀하네요.” 마지못해 말을 잇노라면 “겨울인데, 비 안 와도 춥다.” 대화는 끝이다.

  가끔 어머님께서 대화를 시도할 때가 있다. 옛날 옛적에, 이미 돌아가신 이모님들이나 그 자제분들의 이야기거나 시골 동네에 함께 지냈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거의 효도,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고, 누구는 죽일 놈이고 누구는 참으로 효자라는 이야기다. 건너들은 이야기들이므로 확인된 바는 없다. 어머님은 그들의 이야기를 본인의 일이나 되는 양 격해지거나 서러워한다. 벌써 수십 번도 더 들은 이야기다. 심심해서 시작한 이야기에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야 하지만 나는 금방 시들해지므로 대화는 중단된다.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다른 고부간. 아마도 이런 일이 고부갈등의 원인이 아닐까 싶다. 어머님께 나의 생각이나 의견은 필요 없다. 호응하는 것이 아니면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지시를 받는 대상일 뿐이다. 어머니의 기본적인 입장으로 보면 고부간의 의논은 필요치 않다. 다만 지시와 수용이 필요할 따름이다. 반면에 나이든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생색내기식 지시가 싫다. 그냥 둬도 될일인데 자꾸만 늘어가는 지청구에 머리가 아프다.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어머니, 오늘은 좀 어떠세요?”

  “괜찮다. 많이 좋아졌구나.”

  “오늘은 비가 오네요. 꽃샘추위가 오려는지 쌀쌀해요.”

  “그래? 따뜻이 챙겨 입어야겠구나.

  “비가 많이 오는구나. 오늘은 부추전을 먹었으면 좋겠다.”

  “네, 그럼 이따 점심 때 부추전 구울게요.”

이런 일상의 대화, 아름답지 않은가? 조금 더 보태자면 창밖을 내다보며 비 오는 날의 운치를 논해도 좋을 터이다. 비 내리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찻잔을 기울이는 고부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라.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작가의 이전글 최여사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