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Apr 26. 2022

진실은 방문 너머에 있다

거짓말 혹은 상상 그 이상

4월 8일 –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시어머니가 또 배탈이 났다. 자주 있는 일이다 보니 그러려니 하다가도 연세를 생각하면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약국에 다녀왔더니 엄마가 묻는다. 사돈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배탈이 났다고 하자 엄마는 시어머니의 먹성을 탓한다. ‘너 퇴근하고 나면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더라. 배가 고파 먹을 것 찾는지, 어제는 비닐봉지에 든 걸 들고 방으로 들어가더라.’

  사실일 수가 없다. 저녁에 퇴근(나는 어머니들의 집에서 나의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퇴근이라 부른다)할 때 엄마의 방문을 닫는다.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가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리 만무하다. 투시력이 있다면 모를까. 시어머니가 온 집을 뒤지고 다닌다는 것보다 그 모습을 보았다는 엄마가 더 큰 걱정이다. 거짓말일까? 아니면 지난번처럼 또 환각일까. 두 어머니는 돌아가면서 상대방에 대해 고자질(?)을 한다. 그 내용은 무조건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또 고민에 빠진다. 

  분명 두 어머니 모두 인지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흔이 넘은 나이고 신체적 기능도 많이 저하되었다.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므로 사돈지간이라는 불편한 관계를 무릅쓰고 한 집에 모셨다. 웃으며 ‘어머, 그랬어?’하고 넘어가도 될 일이지만 그것이 어머니들의 안전에, 일상에, 또 나의 내면에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킬지 걱정이다.

  시어머니는 친정어머니가 밤마다 집안을 돌아다닌다고 말한다. 못 걷는 것은 거짓말이며 딸에게 엄살 부리는 거란다. 그 증거로 욕실에 있는 물건들이 본인이 정리한 대로 있지 않다고 한다. 드러누운 것이 엄살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혼자서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엄마가 밤에라도 걸어 다닌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친정어머니는 내가 퇴근하고 나면 시어머니에게 사람들이 놀러 온다고 한다. 가끔 남자도 찾아온단다. 시력도 청력도 모두 저물어 가는데 닫힌 문 건너편의 상황을 보고 듣고 한다니 소머즈가 따로 없다. 어찌 생겼더냐 물으니 뒷통수만 봐서 잘 모른단다. 호호백발에 기다시피 하는 할머니를 찾아오는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누군가 밤마실 온다면 울 어머니 심심치 않아서 다행이다. 

  시샘에서 오는 거짓말일까? 환각, 환청일까? 뭐가 되었건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라서 안타깝고 사실이 아니라서 걱정이다. 멀쩡할 때와 수상할 때가 따로가 아니다. 멀쩡한 중에 수상하고 수상한 중에도 멀쩡하다. 이제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진실이건 거짓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별일 없으면 된다. 더 아프지 말고 내 힘으로 감당할 만큼만 사고 치면 족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최여사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