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May 07. 2022

고여사 일기

사레

4월30일 – 사레   

  식탐이라고는 1도 없는 엄마, 남은 계란말이 한 조각이 눈에 밟혀 급히 먹다가 사레가 들고 말았습니다. 어떤 경우도 수저를 놓으면 그만이었는데 오늘은 왜 집어 먹었을까요. 숨을 쉬지 못하고 ‘켁켁’대는 엄마를 보니 애가 탑니다.

  나이를 먹다보니 저도 젊을 때와는 다르게 사레가 주는 데미지가 상당히 컸습니다. 이물질을 제거하려는 몸의 저항에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깊은 기침을 하게 되지요. 가끔 오줌을 지릴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이제 늙는구나 하는 마음에 서글픔마저 느끼는데 아흔이 넘은 엄마는 오죽할까요.

  등을 두드려 달라기에 주먹을 쥐었다가 겨우 손바닥만 한 엄마의 등짝을 보고는 멈칫 합니다.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지요. 그런데도 엄마는 온몸이 울렸나봅니다. 그예 두어 숟가락 먹었던 음식마저 토해냅니다. 토하고 또 토하기를 반복하는 엄마. 한 번의 구토로도 먹은 것들은 이미 나왔는데……. 그 뒤로는 노란 위액만 올라옵니다.

  안쓰러움과 짜증은 한 세트인가 봅니다. 그렇게 토하고도 ‘켁켁’거리는 엄마를 보자 이번엔 짜증이 납디다. 엄마는 약간의 불편함도 견디지 못할 만큼 엄살이 심한 편입니다. 다친 기도의 상처로 인한 이물감을 견디지 못합니다. 기어이 그걸 뱉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계속해서 억지로 기침을 해대는 고집을 보자니 안쓰러움이 짜증으로 변한 것이지요.

  잠시만 참고 안정을 시키면 될 것 같은데 엄마는 견디지 못합니다. 위액까지 내놓은 마당에도 쓰레기통을 붙잡고 계속 토하는 시늉을 합니다. 엄마는 눈물, 콧물은 물론이고 위장까지 싹 비운 듯합니다. 저는 그저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엄마는 도움을 원치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말끔하게 해 줄 수 있다면 모를까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상황은 종료가 되니까요.

  토하기를 마친 엄마는 잠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번엔 속이 쓰리다고 하네요. 젤 상태로 된 위장약을 드렸더니 싫다고 합니다. 엄마는 죽, 푸딩, 떠먹는 요구르트, 계란찜, 스프, 묵 등 물컹거리는 음식은 절대로 먹지 않거든요. 젤 상태의 위장약이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뱉어냅니다. 평생 그런 식감은 취한 적이 없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속은 쓰리지만 약은 먹기 싫어 엄마는 작은 몸을 콩벌레처럼 구부립니다. 알약으로 된 위장약을 사서 드렸더니 그제야 드십니다. 끙끙 앓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합니다. 견디지 못하는 건 엄마가 아니라 저였어요. 병원으로 모시는 게 편할 것 같아 여쭈었더니 그대로 죽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어른들은 왜 병원에 가는 걸 그렇게 싫어할까요? 네, 물론 저도 병원이 좋은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아픈 걸 견디는 것 보다 치료를 받는 쪽이 훨씬 좋아요. 저도 엄마 닮아서 엄살이 있거든요. 

  약효가 도는지 엄마는 몸을 웅크린 채 자리에 눕습니다. 깊은 잠에 빠진 걸 보고서야 저도 한시름 놓습니다. 작은 음식 조각으로 인한 사레가 엄마의 며칠을 망쳐놓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최여사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