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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21. 2022

최여사 일기

니 맘 따로 내 맘 따로

  오월이 되도 써늘한 날씨가 계속되다 며칠 전부터 여름 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해가 더 오르면 제법 따스한 열기가 느껴지다가 낮 동안은 뜨겁다. 모자를 쓰고서야 외출을 한다.

지난 늦가을부터 집 밖 출입을 하지 못한 어머님께 산책을 권했다. 너무 오래하지 말고 마을 공원에라도 다녀오면 어떨까 여쭈었더니 싫단다. 아직 춥다는 게 어머니의 이유였다.

  점심때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길래 화투놀이를 했다. 산책도 싫다니 뭐라도 적적함을 덜어 드리자고 시작했는데 놀이 도중에 넌즈시 물었다. '혹시 나를 어데로 보내고 싶냐'하신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더니 요즘들어 자꾸 밖으로 나가라고 성화를 하는 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단다. 저절로 '헐~!' 소리가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 했더니 지난 번엔 병원에 보내겠다지 않았냐고 한다.

  사흘 전에도 산책을 권했었다. 어머니는 그날도 넘어져 다치면 어쩌냐며 거절했다. 그러면서 넘어져 다치면 어찌할 거냐고 묻기에 넘어지긴 왜 넘어지냐, 다치면 병원엘 가야지 했었는데, 그 상황의 시작과 과정은 어데로 사라지고 '병원으로 모시야지요'만 남아 '병원으로 치워야지'로 어감이 바뀌었다. 답답해 할까봐 산책을 권한 것이지 딴 뜻은 없다고 했더니 '그럼, 말고' 한다. 그러더니 '제주도에는 여행가자고 꼬여 데리고 와서는 버리고 가는 며느리들 때문에  버려진 노인네가 버글버글 하단다.'했다. 도대체 그런 말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산책을 거절한 이유가 나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버려질까봐 두려워서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기가막히지만 뭐라하지 못했다. 나는 헛웃음이 나오는 말을 어머니는 너무도 심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왜?라는 말도 필요없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걸 어찌할까. 이런 일이 있을 때야 어머니가 치매증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무도 멀쩡해서 잊고 있다가 뒤통수를 한방 맞고서야 아차~하니 나도 치매인가?

  흔히 '선생이 제 자식 못 가르치고, 가족끼리는 운전 연수를 하는 게 아니다.'는 말을 한다. 나는 거기에 하나 더 보태려 한다. '제 부모 요양보호는 하는 게 아니다.' 가족 요양을 하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보람있다. 요양보호사와 대상자 간에 일정한 규칙도 지키고 예의도 지킨다. 가족 요양을 하기전에 어머니는 요양보호사에게 무척 고마워했다. 며느리가 다 만들어 준 음식으로 상을 차렸건만 황송해 하며 상을 받았다. 청소라도 할라치면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며느리에겐 다르다. 매번 잔소리다. 오죽하면 정해진 시간 동안은 요양보호사니 '선생님'이라 부르라 했을까.

  요양보호사에게 통사정을 해가며 산책을 하던 어머닌데 이제는 며느리가 버릴까봐 두려워 산책을 피한다. 버릴 거면 뭐하러 모셔왔을까요 했더니 '그 속을 누가 알어.'한다. 뒤로 넘어갈 소리다. 인지 장애가 온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를 미더워 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입 안의 혀 같이 살갑지는 않지만 식사를 챙기고 의복을 챙기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며느리다. 그럼에도 고마워하기는 커녕 의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딱 하나, 시집살이를 시킨 일이 마음에 걸려서 일 게다. 

  잠시 다른 대상자를 케어하고 어머니를 다른 요양보호사에게 맡길까 고민해 본다. 어쩌면 그 편이 서로에게 나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머니의 산책은 남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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