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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un 24. 2022

최여사의 일기

자존심 지켜주기

6월 5일 자존심 지켜주기     

  거북이만큼이나 느린 어머니가 빠르게 화장실 안으로 사라진다. 보기 드문 빠름에 놀란 내 눈길이 화장실 안으로 따라가다 급히 닫히는 문에 부딪힌다. 한참 동안 잠잠했던 장이 탈이 난 모양이다. 

  화장실에 들어간 어머니가 십 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아 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변기 주변엔 오물이 흘러내렸고 어머니는 변기 안쪽에 쭈그려 앉아 빨래를 한다. 제대로 처리가 안 된 모양이다. 전광석화와도 같았던 속도도 역부족이었나 보다. 아는 척하려다 그만두었다. 기껏 옷가지 몇 개 빨아주려다 어머니 자존심이 다칠 것 같아서다. ‘아직은’ 농사 충분히 짓는다며 시골로 돌아가기를 소원하는 어머니다. 

  삼십 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 있으세요? 너무 오래 걸리네요.”했더니 “좀 씻는다.” 는 답이 들린다. 문틈으로 수건으로 아랫도리를 가린 모습이 보인다. 모른척하며 ‘너무 오래 걸려서 무슨 일 있나 했어요.’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표시 안 나게(?) 뒷정리를 다 하고서야 어머니는 밖으로 나오신다. 슬그머니 들어가 오물이 흐른 변기와 군데군데 찌꺼기가 남은 바닥을 청소했다.

  날씨가 썰렁하다. 고대하던 비가 내려 좋긴 한데 어머니 컨디션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핫팩을 데워 들고 들어갔다. 배 위에 올려주자 괜찮다고 하면서도 편한 자세를 위해 몸을 뒤척인다. 전기요의 전원을 올렸다. 한바탕 쏟아내고 마음도 졸였으니 한숨 푹 주무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저녁엔 흰죽을 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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