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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un 24. 2022

최여사 일기

모든 것은 니 탓이로다

6월 7일 책임전가     

  반쯤 열린 문 안에 달력을 마주 보며 멍하니 앉아있는 어머니가 보인다. 한참 후에도 꼭 같은 자세다. 점심식사 준비하기에 좀 이른 시간이라 이야기라도 나눌 양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뭐 하세요?”

어머니의 대답은 여지없다. 

“그냥 앉았다.”

“달력 보시던데.”

그러자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니가 오면 난 무섭다.”

“예? 제가 왜요?”

“오늘은 또 뭐라고 야단 칠라고.”

오늘도 나는 뒤통수를 잡는다. 

  어제 어머니는 시골 마을 친구와 통화를 하고서는 콩 심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시골집으로 가서 콩을 심었으면 했다. 콩은 왜 심고 싶냐 물었더니 둘째 아들 주려고 그런단다. 아들이 당뇨라서 몇 년 동안 수확한 콩을 다 줬는데 작년엔 주지 못했다고 마음이 불편하단다. 얼핏 검정콩을 찾던 시동생이 떠올랐다.

  “어머니, 그때는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가능했지만 지금은 몇 걸음 걷기도 힘드셔서 농사는 안돼요. 설사 그런 몸으로 농사를 지었다 해도 아들이 그 콩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나 있겠어요? 농사지을 형편이 되면 좋겠지만 마음 접으세요. 그리고 큰아들이 그 말을 들어줄까요? 괜히 아들들 속상하게 하면 어머니도 편치 않으시면서.” 그래도 어머니는 계속 보챘고 더는 감당하기 힘들어 짜증이 나서 남편에게로 떠넘겼다. 

  오후에 어머니는 기어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열쇠를 달라고 했다가 걱정만 들었다. 너 귀찮고 힘들게 안 한다며 열쇠만 주면 혼자서 찾아가겠노라고 했다. 남편은 짜증을 냈고 나는 열쇠를 기다리는 어머니께 그런 상황을 모른 척했었다. 

  “어머니가 시골에 농사지으러 간다고 해서 잔소리 좀 한 걸 그리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누가 들으면 딱 오해하기 좋겠어요. 시작은 항상 어머니가 하시고는 불리하면 저한테 뒤집어씌우는 건 아니지요”

  누군가가 지켜봐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한 어머니다. 독립된 생활이 불가능해서 모신 것인데 자꾸만 고집을 피운다. 산책하는 일도도 춥다는 등 말이 안 되는 이유로 거부하시면서 시골에서는 마당에라도 나가면 덜 답답하단다. 이곳으로 오시기 전, 마당으로 나가다 문턱에 걸려 넘어져 다친 기억은 사라졌나 보다. 그 일로 어머니는 혼자 사시는 일에 종지부를 찍으셨다. 일상이 버거워지고 기본적인 행동마저 제약을 받게 되자 스스로 한 결정인데 지금은 ‘니가 나오라고 사정하는 바람에’ 라며 없는 말로 핑계를 댄다.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신체적 제약을 잊게 한다. 그 사실을 주지시키면 갑자기 화를 낸다. 그리고는 듣기 싫다며 대화를 거부한다. 병으로 인해 발생되는 증상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노화로 인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아들네로 온 것도 알지만 그 사실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떨어질 수 없음은 인지하지 못하니 이런 상황을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연출한다.

  어머니를 잘 모르는 사람이 단순한 대화를 통해 어머니를 평가한다면 ‘정상’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은 교묘하게 거짓말로 덧씌워졌다. 그것은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알아낼 수 있는 정도로 아주 정교하다. 가끔 그 거짓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시골에 있을 때, 잠시 요양업무를 봤던 요양보호사에 관한 일도 그런 경우다. 요양보호사는 어머니의 보호자라며 통장을 맡길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집 뒤뜰에 가면 어머니의 간식을 훔쳐 먹고 버려진 포장지들이 수두룩했단다. 그래서 내쫓았다는 게 어머니 주장이다. 사오년이 지난 일인데 처음 듣는 이야기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머니는 요양보호사를 고용함에 자신의 수급비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요양보호사를 해고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설득도 소용없었다. 덧붙인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게 꼴 보기 싫었다고 했다. 그때의 해고 사유와 오늘 이야기한 해고 사유가 완전히 다르다. 순간, 의심을 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하지만 최근 어머니의 행동을 보면 거짓말이다. 나 자신도 어머니 거짓말의 피해자가 아니었던가. 

  물론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엔 억울하고 분해서 어쩔 줄 몰랐지만 그 거짓말을 하는 행위 또한 자신이 그리 믿기에 일어난 상황이라는 것을 교육을 통해 배운 뒤로는 받아들이기가 좀 나아졌다. 어느 순간 내뱉은 말을 1분도 되지 않아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우기는 경우도 많다. 냉소적인 한 마디에 섭섭한 마음이 들어 ‘어머니가 그리 말하면 제가 얼마나 섭섭한 줄 아세요?’ 하는 순간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다고 나를 그리 몰아세우냐’며 오히려 억울해 견디지 못해 하기도 한다.

  한동안 말을 하지 않기로 한 적도 있다. 적적해 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걸려 다정히 다가가며 말을 걸면 꼭 화가 나고 짜증이 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싶어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더니 며느리가 당신을 싫어한다며 울먹인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으로 마닥뜨리고 보면 그냥 아이가 아니라 정말 말 안 듣는 아이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치매는 병이다. 안다. 알아도 힘들다. 돌보는 방법을 몰라 힘들고 알아도 힘들다. 책에서 본 것처럼, 교육을 받을 때의 사례에 나오는 대상자처럼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치매는 그냥 병이 아니다. 병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게 교묘히 위장된 병이다. 어느 순간에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병이다. 주간병인이 억울하게 뒤집어 쓸 수 있는 병이다.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남은 생애를 잘 보살펴 드리고 싶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공부하고 교육받아도 한순간에 욱하고 치받는 감정들이 생겨난다. 수양이 덜 된 탓이리라. 수양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한다고 무심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더 모를 일이다. 더 망가진 모습을 보이기 전에 떠나시는 편이 어머니나 남은 자식들에게나 더 행복한 일일 것만 같다. 이런 일이 어느 순간 나에게 닥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러하기에 나는 어머니를 보며 연습을 한다. 망가지지 않게, 망가지더라도 예쁘게, 덜 밉게 망가지기를. 하지만 그럴 일이 없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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