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사 일기

끝나지 않는 소모전

by 김민주

5월 1일 소모전

오월의 첫날, 일요일로 시작된 오월 아침부터 시어머니와 소모전이 다시 시작됐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들여다보니 심심해하시는 것 같아 화투놀이라도 해 드릴까하고 들어갔더니 농사타령을 한다. 깨도 심고, 콩도 심어야 하는데. 고추 모종도 내야 하는데. 푸념을 하던 어머니는 또 터미널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터미널까지만 데려다 주면 시골집으로 가셔서 여름나도록 농사를 짓겠단다. 혼자서는 열 걸음도 걷지 못하시면서 틈만 나면 농사타령이다.

달래고 설득하려다 그만 두고 짐을 싸시라고 했다. 원하시는 대로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면 되겠냐고 했더니 정말이냐고 되물으신다. ‘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하나 못 들어드릴까요. 볼일 보고 한 시간 뒤에 올 테니 준비하고 기다리세요.’ 알겠다는 대답을 등 뒤로 남기고 집으로 왔다. 그러려니 하면 될 일에 또 감정이 앞선다. 온전하지 않은 정신인 걸 알면서도 짜증나는 건 아직 나의 수양이 깊지 않아서 일 것이다.

다시 되돌아오니 어머니는 혼자 중얼 거린다. 아들 생일이 다 되어 가는데 생일 밥은 먹고 가야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들 생일이 뭐 대수라고, 그냥 말 나온 김에 길 나서자고 했더니 눈치만 살핀다. 지팡이 없이 열 걸음을 못 걷고, 숟가락 들기도 버거운 형편에 농사에 대한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샘솟는지 알 길이 없다.

어머니 앞에 앉아 차분히 여쭈었다. 기어 다니며 농사를 지어서 그걸로 뭘 할 거냐고. 너 줄려고 그런다. 전 그거 받을 생각 없는데요? 힘 있을 때 지어주신 거야 감사하게 잘 받았지만 기어 다니면서 지은 곡식은 받고 싶지 않아요. 가만있어도 손가락이 아프다면서 질긴 잡초 는 어찌 뽑으려고요.

아들 생일 핑계를 대지 않았다면 정말로 터미널에 모셔 드리고, 먼발치로 미행을 하다 난관에 봉착하면 다시 모시고 올 생각이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일들이 실제 본인에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몸소 확인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지만 솔직히 고생해봐야 더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 푸념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일련의 일들이 어머니의 대화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이 없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하는 말은 ‘뭐 하지마라, 그건 왜 그리 하느냐.’ 등의 지시하는 말과 탓하는 말이 대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부모 자식 간의 대화는 그런 종류가 대부분이다. 소통을 위해 무엇인가 애쓰고 노력해야지만 건전하고 건설적인 대화가 이루어진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화의 기술을 익히는 것도 불가능하고 자식의 마음을 어루만질 푸근한 말도 하지 못한다. 배울 생각도 없지만 평생의 습관이 고쳐질 것 같지도 않다. 그저 듣는 사람 몫으로만 남는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던 대로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웃으며 흘려듣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고부간에 유일하게 사용 가능한 대화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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