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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an 23. 2023

고여사 일기

섣달 그믐날

  한 줌 쥐어보니 손안에 쏙 들어온다. 그래도 발목인데... 가슴이 쓰리다.


  살집이 없는 어머니의 몸은 과학실에 걸린 해골 같다. 거기에다가 얇은 비닐 막을 씌워놓은 듯하다. 비닐은 낡아 탄력을 잃고 군데군데 생선비늘처럼 일어난다. 한숨 한 자락에도 하늘거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가볍다. 


  발을 씻기다 말고 엉뚱한 생각을 한다. 각질도 나이에 따라 그 두께가 다르구나 하고. 어머니의 각질은 까슬하지가 않다. 촉감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얇고 부드럽다. 게다가 생선비늘처럼 겹겹이 붙어있다. 해녀였던 어머니가 물고기가 되려는지... 어쩌면 깊은 바다 속을 더듬어 배를 채웠던 시절에 물고기를 부러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등에 업은 새끼 한 마리 없는.


  정오를 넘긴 섣달그믐날의 햇살이 기척도 없이 방안 깊숙이 들어선다. 어머니는 옹이 같은 두 무릎을 오므렸다. 대책 없는 밝음에 바짝 말라버린 몸피가 부끄러웠을까. 발등을 따라 발가락으로 이어지는 푸른 실핏줄이 선명하다. 가장 큰 손톱깍기도 무용지물인 두꺼운 발톱이 천 길 낭떠러지 암벽에 둥지를 튼 독수리 발톱 같다. 아, 어머니는 물고기가 아니라 새가 되어 날고 싶은 것일까.


  어머니는 쓸쓸한 설날 아침을 맞을 것이다. 명절 음식 준비와 설날에 찾아드는 손님맞이에 바쁜 나를 대신해서 아들은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찾아올 것이다. 시어머니도 나머지 자식들이 찾아오는 아들네(우리 집)로 거처를 옮긴다. 애초에 병원에 입원한 걸로 생각하기로 했지만 명절엔 마음이 다르다. 내 마음이 이럴진대 어머니는 오죽할까. 이럴 땐 명절이 없었으면 싶다. 앙상한 다리에 로션을 듬뿍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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