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Feb 09. 2023

최여사 일기

설날

  아들 셋, 며느리 셋, 손주 내외와 증손주 둘까지, 집안이 꽉 차도록 모였다. 세배를 드리려고 준비를 했지만 어머니는 거부하신다. 아플 때는 세배 받지 않는 법이란다. 명절이 아니고는 힘든 대가족 모임이다. 아들과 손자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인 어머니인데 어째 표정이 영 심드렁하다. 많이 편찬은가 걱정하며 다들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저녁상을 들이자 어머니가 밖을 기웃거린다. 뭘 찾나 여쭈니 아들과 손주들이다. 분명히 간다는 인사도 전했는데 그세 잊은 건지. 다들 돌아갔다는 말에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수저를 내려놓는다. 어미가 아프다고 했는데 다들 그냥 가버리다니 자식 다 소용없다는 푸념이 늘어진다. 아프다 하셨으니 며칠 머물러 아흔 노모의 건강을 살필 거라는 생각을 하셨던 모양이다. 더 아픈 표정이 되어 자리에 누워버렸다. 


  부모와 자식, 형과 아우는 하나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다. 부모가 아프면 자식도 아파야 하고 형이 어려우면 동생이 돕는 게 당연하다는 사고는 자식들과 자주 부딪힌다. 가족이지만 개별적으로 타인일 수밖에 없는 현시대의 사고를 용납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자식들과 여러 가지 갈등을 겪지만 자신의 생각을 바꿀 마음은 전혀 없다. 언젠가 ‘같은 걸 봐도 사람들 생각은 제각각일 텐데 어머니는 왜 남의 생각까지 조종하려 하세요? 했다가 두고두고 서럽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네가 남이가?


  그토록 서운할 것을 왜 세배는 받지 않고 돌아누웠는지 그 속내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설날 아침에야 찾아온 자식들에게 부아가 난 것이리라. 거부하고 돌아누우면 어르고 달래며 잘못했다 반성이라도 할 줄 아셨을까? 그랬다면 어머니의 작전은 완벽하게 실패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모두 처가로, 친정으로 떠나버렸다. 명절 마다 꼭 친정엘 가련다며 타박하던 예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명절마다 묶어두려던 심사는 도대체 어떤 마음에서 생겨난 건지.

작가의 이전글 고여사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