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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16. 2023

최여사 일기

목욕

  겨울 동안은 목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더니 목욕 준비를 청했다. 며느리가 씻겨주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통에 준비만 한다. 큰 물통과 작은 물통에 적당한 온도의 물을 받아두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미끄럼방지 고무판을 깔았다. 그 위에 뜨거운 물을 서너 바가지 뿌려 온기가 돌게 준비했다.


  고무판에 편하게 다리를 뻗치고 앉은 어머니께 수도 밸브를 고정하며 당부했다. 물이 모자라면 이리저리 돌리지 말고 요대로 위로만 올리라고. 세 번에 걸쳐 확인을 받았고 십분 후에 등을 밀어드리겠다 말하고 욕실을 나왔다. 


  잠시 후, 문을 열자 어머니는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어, 어’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물을 퍼 몸에 부었다. 놀라서 물 온도를 확인하니 찬물이다. 밸브도 반대로 돌아갔다. 경련을 일으키는 사람처럼 떨고 있는 어머니에게 짜증이 났다. 왜, 이 모양으로 있냐고. 


  어머니도 떨면서 화를 냈다. 시골 수도 밸브와 다르다고. 내가 한 말은 어디로 사라지고 시골집의 수도밸브와 다른 것에 짜증을 내며 욕을 했다. 설사 밸브가 달라 헛갈렸다해도 찬물이면 반대로 돌리면 될 것을. 온도가 잘 맞지 않으면 며느리를 부르던지, 게다가 찬물인 걸 알면서도 몸에 끼얹는 것은 무슨 일인지.


  급하게 따뜻한 물을 어머니에게 부었다. 추위를 가시게 하고 나서 목욕을 끝냈다. 이불속에 뉘이고 따뜻한 차를 준비해드렸다. 한참을 더 떨던 어머니의 표정이 안정되었다. 너무 놀라 화를 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앞으로 목욕 도움을 거부하지 말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며느리에게 신세를 지는 게 싫어서인지, 알몸을 맡기는 게 싫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위험을 감수할 만한 건 아니지 않을까.


  정리가 되고나자 걱정이 밀려든다. 아무래도 치매증상이 깊어진 것은 아닐까싶다. 온몸을 떨면서도 찬물을 끼얹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찬물이 나오는 수도밸브를 반대로 돌리는 상식적인 행동도 하지 못하고, 문 밖의 며느리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서 춥다고 짜증을 내고 욕을 하던 그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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