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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21. 2023

최여사의 일기

서울 간 아들

  아침상을 들여도 어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머리에 수건을 접어 얹고 뜬 듯 만 듯 실눈은 천정을 향해 있다. 잘 잤느냐는 인사에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인사를 받고 받지 않고는 거의 반반이었으니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었다.


  상 차리는 소리에 슬그머니 일어나 앉던 평소와는 다르다. 겉옷을 입은 양을 보니 일어나 세수까지는 마친 것 같다. 다시 누운 채 모른 척하는 것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상했다는 뜻이다. “어머니, 아침 드셔요.” 힘없이 손을 들어 내젓는다. 먹지 않겠다는 말이다. 또 뭣에 마음이 상했을까.


  서울로 돈벌이를 가노라던 아들이 소식이 없어 걱정이란다. 밤새 걱정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노라 한숨짓는다. 늙은 아들 돈벌이시킨다며 곱지 않은 눈길로 며느리를 노려보았는데 스무날이 지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고 전화 한 통 없다고 밤새 마음을 앓은 모양이다.


  걱정되면 1번을 누르지 그랬냐는 타박을 하며 당신 전화기의 1번을 눌렀다.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행히 오늘 아침은 발음이 제법 또렷하다. 일부러 큰소리로 아들 걱정에 어머니가 식사를 거부한다고 고자질했다. 전화기를 넘기자 어머니는 아들 이름을 부른다. 이제는  1번을 누르는 행위도 잊은 모양이다. 모든 실행능력이 떨어져도 아들에 대한 마음만은 본능에 가깝다. 통화를 마친 다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식사를 했다.


  상을 물리고 커피를 마시다 말고 멈칫한다. 아무래도 아들 목소리가 아닌 것 같단다.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의 기운을 느꼈을까. 뜨끔하면서도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귀도 잘 안 들리시나 봐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 잔을 기울인다.


  남편은 설 연휴 마지막 날 응급실에 간 이후 지금까지 투병중이다. 갑자기 시작된 통증이 암으로 판정되고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옮겨 의사와의 면담을 통해 수술하기까지의 지루한 기다림, 암 수술을 받고 두 주가 지났지만 남편은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입원 중이다. 수술 전 검사부터 지금까지 스무날을 서울 병원에서 머물고 있다. 혹시나 어머니가 찾을 것을 대비해서 일하러 간다고 둘러댔다. 수술 후 한 동안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통화 할 수가 없어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를 댔었는데 약발이 떨어진 것 같다.


  서울과의 먼 거리, 어머니들의 부양 등으로 함께 가지 못했다. 남편은 통합병동에 입원 중이고 수술 후의 통증과 더딘 회복으로 힘든 투병 중이다. 봄이 오고 꽃이 피지만 마음은 닫힌 채 겨울이 이어진다. 말도 안 되는 어머니들의 엄살과 고집에 지치고, 생각보다 길어지는 남편의 회복이 걱정이다. 머리도 복잡하고 어깨는 무겁다. 마음은 갑갑하고 한숨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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