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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an 18. 2023

나의 일기

생애 첫 구급차를 타다

  아침 설거지가 끝나고 다음 대상자에게 가려고 채비를 마쳤다. 현관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변의를 느꼈다. 이대로라면 첫 대면에 화장실 신세부터 져야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볼일을 보고 길을 나설 요량으로 다시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무슨 사단이 난 것일까? 갑자기 창자가 끊어질 듯한 통증이 아랫배를 강타했다. 양손으로 배를 잡고 거꾸러지듯 몸을 웅크렸다. 순간 명치에서부터 올라오는 이물감, 아침에 먹은 것들이 죄다 식도를 거슬러 올라왔다. 변기에 앉은 채 바닥에 토사물을 쏟았다.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 증상들에 당황했다. 복통과 구토가 계속되자 급기야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눈앞이 캄캄하고 아뜩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다행히 외출복을 입은 상태라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남편에게 빨리 건너오라는 전화를 한 뒤 119를 눌렀다. 남편이 온다고 해도 안전하게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아 주소와 증상을 겨우 전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몸이 자꾸만 가라앉고 눈도 감겼다. 그 와중에 센터에 전화를 넣어 출근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끊이지 않는 복통에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구급차에서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지? 마음은 간절한데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땀범벅이 되어 변기에 앉은 나를 보고 남편이 기겁을 했다. 상태를 물으며 토사물이 가득한 바닥을 씻어냈다. 병원에 가자는 말을 하는 순간 구급대가 도착했고 생애 처음으로 구급차에 탔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각종 검사를 했다. 급성 장염부터 약물 쇼크까지 염두에 두었지만 검사결과는 이상을 일으킬만한 요인이 없었다. 벼락이라도 맞은 느낌이다. 다행히 병원을 다녀온 다음에는 복통도 구토도 사라졌다. 피곤함에 종일 잠에 빠져들었다.


  구급차를 탈 만큼 급박했던 증세가 사라지기까지 두 세 시간이 걸렸다. 남편이 어머니들의 점심을 차리겠노라 했지만 거절했다. 정신을 차리자 걱정된 것은 두 어머니의 상태였다. 너무 당황해서 어머니들의 입장을 챙기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친 상황에 얼마나 놀랐을까. 친정어머니는 슬그머니 훑어보며 눈치를 살폈고 시어머니는 그예 머리띠를 매고 드러누웠다. 친정어머니는 겨우 한 술 뜨시고 시어머니는 식사를 거부했다. 달래고 말고 할 기운이 나지 않아 한 번 더 권하고는 상을 거뒀다.


  사람은 성품에 따라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다르다. 실려나간 딸이 멀쩡하게 돌아왔으니 친정어머니는 일단 한숨을 돌리셨다. 왜냐고 묻기보다 이야기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반면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실려나간 시점부터 드러누우신 듯했다. 입맛을 잃었고 모든 것을 본인 탓으로 돌렸는지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을 되뇌었다. 저녁에야 겨우 상을 받으시고는 큰 병원 가서 제대로 치료 받으라 채근한다. 


  마지막 말은 듣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너 잘못되면 나와 내 아들은 어쩌노.’ 부담스럽다. 며느리를 걱정하는 마음인 것은 알지만 말 그대로라면 며느리의 안위보다는 당신과 당신 아들의 처지를 걱정하는 게 된다. 늘 그런 식의 말을 하는 어머니. 그 때문에 자식들로부터 오해에 오해를 더해 관계가 소원해지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말투다. ‘ 괜찮으냐.' 한 마디, 혹은 그런 눈빛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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